[경제 view &] 뛰어난 인재 한 명이 산업을 일으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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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

모든 기업이 인재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와인산업에도 인재가 한 국가의 산업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이탈리아의 와인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마리오 인치사 델라 로케타(Mario Incisa della Rocchetta) 후작과 그의 조카인 피에로 안티노리(Piero Antinori ) 후작이 주인공이다. 이탈리아는 전 국토에서 와인이 생산된다. 생산량 기준으로 프랑스·스페인과 1, 2위를 다툰다. 그러나 품질 면에서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국들보다 낮은 대접을 받아왔다. 그런 이탈리아 와인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바로 인치사 후작이 만든 사시카이야가 세계 무대에 등장한 1968년부터다.

 원래 사시카이야는 인치사 후작 집안에서 프랑스 보르도 스타일의 고급 와인을 만들어 마시기 위해 프랑스의 샤토 라피트 로칠드에서 가져온 묘목을 키워 만든 와인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와인의 품질등급관리체계에 따르면, 사시카이야는 이탈리아 토착 품종만으로 만든 와인이 아니었기에 등급상으로는 최하위급인 테이블 와인에 불과했다. 20대 초반의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이 외삼촌인 인치사 후작 집에 갔다가 이 와인을 마신 게 빛을 보게 된 계기였다. 이름도 없는 와인의 맛에 반한 안티노리 후작은 이 와인을 세계 시장에 팔자고 제안했고 세계대회에서 입상까지 하게 됐다. 비싸고 구하기 힘든 프랑스 보르도의 특등급 와인들보다 저렴하면서도 이에 뒤지지 않는 맛과 향을 지닌 사시카이야에 세계 와인업계의 이목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당시 20대의 안티노리 후작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보르도 품종의 와인들을 블렌딩한 것에 이탈리아 토스카나 토착 포도품종인 산조베제를 섞어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도전한 것이다. 안티노리 후작은 ‘티냐넬로’에 이어 솔라이아를 만들어 세계적 와인잡지인 와인스펙테이터 평가 100대 와인 중 이탈리아 와인으로는 최초로 1위 자리에 오르기에 이른다. 단순히 와인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례는 국경 없는 경쟁에 노출된 비즈니스 세계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배울 점을 던진다. 우선 젊은 인재들을 찾고 이들의 조언을 제대로 수용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는 것이다.

 우리는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연공서열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연장자들의 경험과 지혜를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인재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제안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분위기는 문제다. 만약 인치사 후작이 20대 초반의 조카인 안티노리 후작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탈리아 와인의 중흥은 기대하기 힘들다. 둘째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정신이다.

 안티노리 후작은 사시카이야의 성공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좋은 와인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했다. 보르도산 와인을 기초로 끊임없이 이탈리아 토종 품종들을 섞어 새롭고도 고급스러운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을 잇따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노력은 이탈리아 토착 품종 이외의 품종을 섞어도 등급을 인정받는 방향으로 품질등급관리체계까지 바꾸게 된다. 셋째는 서로의 개성을 살리는 후발주자들이 풍부하게 많았다는 점이다. 오늘날 ‘수퍼 투스칸’이라 불릴 만큼 이탈리아 와인의 명성이 높아진 것은 수많은 와이너리가 각자 테루아르(토양)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좀 된다 싶으면 베끼기에 급급한 기업문화를 가지고 단시간에 실력을 끌어 올릴 수 없다는 사실은 와인업계는 물론 비즈니스 세계에 공통된 원칙이다. 뛰어난 인재가 만들어낸 좋은 상품 하나는 그 나라의 경제와 문화 보급에 기여한다. 우리도 이런 인재와 기업문화, 그리고 이런 상품을 키워내야 할 때다.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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