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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힘내라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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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박태욱
대기자

주말 내내, TV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커다란 벽처럼 방파제를 넘어 밀려오는 바닷물,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집들, 나뭇잎처럼 쓸려 나가는 자동차·선박, 통째로 사라지거나 불길에 휩싸인 마을 마을들…. NHK를 통해 시시각각 전해지는 동부 대지진의 영상은 참혹했다. 이게 정말 현실일까 싶은, 화면에 나온 한 중년남자처럼 볼을 꼬집어봐야 할 듯한 장면. 마음은 내내 무거웠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숲의 도시(杜の都·모리노미야코)’로 불릴 만큼 쾌적한 도시 센다이(仙臺), 200여 개의 섬이 점점이 떠 있는 일본 3경(景) 마쓰시마(松島),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곳곳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바닷가 마을들…. 몇 해 전 일본에 머물던 시절, 우리의 남해안을 떠올리며 느긋이 돌아봤던 평화롭고 깨끗하던 도호쿠(東北) 태평양 연안의 풍경은 폐허로 변했다. 그 아래엔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묻혀 있을 터. 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 인간은 철저히 무력했다.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있다. 사망·실종 등 인명 손실이 수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비극적 보도가 나오고, 수많은 가옥·건물은 물론 도호쿠와 간토(關東) 일부의 도로·항만·철도·공항 등 사회기반시설이 말 그대로 궤멸적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발전소는 최악의 상황을 한 고비 넘긴 듯 보이지만 일부 화력발전의 가동 중단 등과 겹치면서 전력난이 현실화하고 있다.

 상당 규모의 여진이 예상되고 아직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곳이 허다한 현 상황에서 피해 규모를 따지는 건 무망한 일인지 모른다. 다만 1995년 한신(阪神) 대지진 때 입었던 10조 엔 안팎의 피해 규모를 웃돌 것만큼은 분명하게 느껴진다. 도호쿠 지방이 일본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다고 하지만 피해 범위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광대하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조금씩 활력을 되찾아 가던 일본 경제에 타격은 불가피하다. 산업시설 자체의 피해도 피해지만 산업활동을 뒷받침할 기반시설의 복구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1%, 적게는 0.2% 안팎 감소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중국에 밀렸다 해도 일본은 GDP 5조 달러를 넘는 세계 3위의 거대경제다. 14일 벌어진 일본의 주가 폭락·엔화 강세가 보여주듯 다양한 파장을 세계경제에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리와 관련해서도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을 기준해 일본과는 수출 3위·수입 2위로 대단히 밀접한 경제관계를 맺고 있다. 세계시장을 겨냥해서는 상당부분 경쟁관계에 있고, 설비·부품과 관련해서는 의존적인 부분도 적지 않다. 단기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업종에 따라선 반사이익을, 또는 손실을 우려하는 분석이 당연히 나온다. 하지만 자연재해는 결국 극복해 왔으며, 시간이 지나면 그 영향은 중립적이란 게 현대 경제가 겪어온 역사다. 틈새는 혹여 기회가 될 수 있겠지만 진정한 경쟁력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일본은 강한 나라다.

 TV를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참담한 현실은 충격적이었지만, 그 못지않게 일본 국민이 보여준 성숙한 자세에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스쳐 지나간 화면이었지만 대피소에 전달된 바나나 상자에 누구도 먼저 손대지 않는 모습을 보며, 같은 상황에서 스스로 어찌 행동했을지 가족과 얘기를 나누었다. 이 엄청난 자연의 힘이 일본이 아닌 다른 곳(우리를 포함해)에서 터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해 보기도 했다.

 가늠할 수 없는 자연의 위력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평형을 유지하는 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힘이 파괴적으로 분출될 때 인간이 대처할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다는 것 또한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해온 게 인류의 역사다. 1960년 칠레 지진, 2004년 수마트라 지진은 쓰나미에 대한 지구적 이해를 높인 결정적 계기였다. 일본이 당한, 앞으로 극복해야 할 동부 대지진 또한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최첨단에 서 있는 일본의 경제·기술적 능력과 이번에 보여준 높은 시민의식은 자연에 대한 인류의 이해와 함께 대처방법을 한 단계 높일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믿음을 더해 부탁한다. 힘내라 일본(감바레 닛폰)!!!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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