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겉무늬' 벤처에 '묻지마'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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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는 우리 경제의 희망이라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5년동안 2만여개를 육성한다는 목표아래 정부가 갖가지 지원책을 펴오고 있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조성된 벤처 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그치지 않는다.
최근 코스닥시장 이상과열을 불러온 유사(類似)벤처와 '묻지마 투자' 의 악순환은 우려 수준을 넘어 벤처정책의 근저를 흔들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최근 4천여 벤처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술력이 있고 사업성이 유망한 하이테크 벤처업체는 34%에 불과했다.
나머지 66%는 기술수준은 웬만하지만 성장성이 낮거나 별다른 기술력이 없는 업체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벤처란 이름만 내걸고 코스닥시장에 등록하거나 인터넷을 통한 주식공모에 나서면 '묻지마 투자' 로 금세 돈방석에 올라앉는다.
이 때문에 '겉무늬' 만 벤처인 유사 벤처도 적지않다.

음식료업체나 섬유업체도 벤처캐피털이 지분의 10% 이상만 되면 벤처로 분류된다.
주가를 띄우기 위해 사업내용에 관계없이 '디지털' 이나 '텍' '텔' 등 첨단 냄새가 풍기는 영어단어를 회사이름 끝에 붙이는 벤처 흉내내기도 유행한다고 한다.

벤처기업은 원래 규모가 작고 첨단기술로 승부를 걸기 때문에 일반투자자는 정보습득은 물론 얻은 정보에 대한 평가 또한 어렵다.
미래의 성장성이 자산이지만 상당수는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현재 한창 뜨고 있는 인터넷 관련주들의 경우도 치열한 경쟁 끝에 살아남는 기업은 결국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된다.

현재 코스닥시장은 개인투자자가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수익이 높은 만큼 위험도 높고, 따라서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들이 지면 그만이라고 넘겨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맹목적 투자와 투기적 환경은 종국적으로 벤처의 자금줄인 코스닥시장은 물론 벤처정책의 근저를 무너뜨린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따라서 벤처 열풍과 코스닥 활황의 주역인 벤처정책이 진정한 벤처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정부는 적극 재점검에 나서야 한다.

우선 벤처기업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과 심사강화를 통해 세제 및 자금지원을 노린 '사이비 벤처' 를 제거해야 한다.
원래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벤처의 정신과는 모순된다.

따라서 직접 지원보다는 벤처가 발전할 수 있는 제도개선과 자금.인력.기술시장 등 인프라 구축에 주력해야 한다.
코스닥시장의 기업내용 공시요건을 강화하고 불량 등록기업은 과감히 퇴출시키는 등 시장감시체계를 서둘러 확립해야 한다.

정부 부처별로 연계성 없이 벤처정책을 쏟아낼 것이 아니라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부서간 유기적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일도 급하다.

'묻지마 벤처 열풍' 은 선의의 투자자를 파멸시킬 뿐 아니라 벽돌을 쌓듯 하나하나를 일궈가는 모든 진지한 기업가들을 허탈케 만든다는 점을 특히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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