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싫다는 아이, 말 못할 고민 있을지도 몰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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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부모의 이혼으로 충격에 빠졌던 민재(9·가명)군. 11월엔 재혼한 아빠를 따라 학교까지 옮기면서 심한 혼란을 겪었다. 이때부터 민재는 밥을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특히 육류는 전혀 먹을 수가 없었다. 체중이 빠지고 심한 우울감으로 학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빠는 우등생이었던 그가 학업을 수행하지 못할 정도가 되자 함께 섭식장애클리닉을 찾았다.

10대 자녀가 있다면 어떤 식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중앙포토]

‘초등학생이 섭식장애?’ 일반적으로 섭식장애는 체중에 집착을 하는 청소년 또는 성인 여성에게 많은 신경성질환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요즘 몸매와는 상관없을 것 같은 초등학생에서도 섭식장애 환자가 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문화적 환경과 스트레스의 증가가 극단적인 식사 거부나 폭식과 같은 섭식장애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 섭식장애는 성인과는 원인과 양상, 그리고 치료법이 다르다. 특히 사춘기 이전에 발생하는 섭식장애일수록 육체적 장애가 심각할 수 있다.

초등학교 4~6학년도 섭식장애 생겨

어린이 섭식장애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성적인 조숙이다. 서울백병원 섭식장애클리닉 김율리 교수는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조숙해지면서 외모 불만족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다”며 “섭식장애의 잠재적 유병률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스트레스 환경이다. 김 교수는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고 이혼율이 늘어나는 등 안정되지 못한 가정도 섭식장애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고 덧붙였다. 한 통계가 이를 뒷받침 해준다.

 미국 국립정신건강협회 캐슬린 메리캉가스 박사팀은 청소년 1만123명을 대상으로 ‘섭식장애’ 유병률을 분석했다(2011년 일반정신의학기록지). 그 결과, 작은 증상을 포함해 섭식장애가 있는 학생이 3%나 됐다. 이는 20여 년인 1990년 조사 때에 비해 2배 정도 증가한 수치다. 급격한 사회 변화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문제는 어린이 섭식장애에 대해 부모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치료시기를 놓친다는 점이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는 “10대 어린이는 체내에 영양을 비축할 수 없기 때문에 성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사춘기에는 한두 달만 영양섭취를 제대로 하지 못해도 탈모·저혈압·저성장과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TV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날씬해지기 위해 억지로 구토를 하거나 이뇨제를 쓰면 골다공증 위험도 높아진다.

자녀 몸무게 자주 확인하도록

아이가 섭식장애가 있는지 알려면 관심부터 가져야 한다. 김율리 교수는 “학교 급식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자녀의 식습관을 파악하는 것이 과거보다 어려워졌다”며 “자녀가 어떤 식사습관이 있는지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말마다 목욕탕에 같이 가서 몸무게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김 교수는 만약 자녀가 섭식장애 증상이 있다면 “요즘 속상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또는 “걱정거리가 있니, 엄마가 보기에 요즘 네가 먹는 것을 피하는 것 같아. 살도 많이 빠져 보이네” 와 같은 표현으로 다가가라고 권했다. 일단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자녀의 식사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해 도시락을 한동안 싸준다거나, 학교 보건교사와 상의해 혼자 밥을 먹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도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된다.

가족과 함께 심리치료 받으면 좋아

만약 자녀가 이런 방법에도 강한 거부감을 보이거나 잘못된 식습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전문병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섭식장애는 원인이 다양해 어느 하나로 단정할 수 없다. 때문에 중증일 때는 ▶유전적 요인 ▶발달행동과 연계된 환경적 요인 ▶개인적인 성격이나 심리적 요인을 분석해 다각도로 치료계획을 세워야 한다. 병원에서는 음식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행동치료, 약해진 신체 기능에 대한 의학적 치료, 그리고 심리치료가 이뤄진다. 어린이 환자는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치료가 효과적이다. 김율리 교수는 “아이의 내적 갈등이나 감정을 비교적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미술치료가 효과적”이라며 “치료는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권병준 기자

이런 증상 보이면 섭식장애 의심을

● 몸무게가 이유 없이 계속 빠진다

● 자신에 대해 낮게 평가한다

● 다른 사람과의 식사자리를 불편해 한다

● 굶거나 폭식한 뒤 구토를 한다

● 유난히 의욕이 없고 집중을 못 한다

※자료: 서울백병원 섭식장애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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