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설(世說)

경쟁력 없는 대학 문 닫아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서승직
인하대 교수·건축학부

한국에서 대학의 간판은 출세를 위한 많은 요건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요소다.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학벌보다 실력이 우선하는 공정한 사회를 외쳐대지만 예나 지금이나 실력보다 학벌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학 만능의 교육정서에 편승해 현재 한국의 고등교육기관 수는 무려 407개교나 되며 대학원도 1115개교에 이른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대학교육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57개국 중 4위지만, 대학교육의 사회 부합도는 51위로 최하위에 속한다.

 분별없이 설립된 대학의 난립은 입학만 하면 쉽게 졸업하는 대학교육시스템 등으로 학력 인플레를 더욱 가속화시켰음은 물론 ‘졸업장=실업증’이라는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금처럼 대학 졸업자가 넘쳐나도 정작 쓸 만한 인재가 없는 것은 마치 홍수 때 먹을 물이 없는 것과도 같다.

 현 대학교육시스템으로는 종지 같은 인재는 양산할 수 있어도 항아리 같은 인재는 결코 육성할 수 없다. 항아리 같은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개혁이 필요하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실력이 없어서 대학을 다닐 수 없는 대학을 육성해야 한다. 경쟁력도 없이 난립하는 400여 개에 이르는 대학 중 25%는 문을 닫아야 한다.

 지금 대학가는 연일 등록금 투쟁으로 시끄럽다. 준비된 일자리에 비해 대학 졸업자가 많은 현실 속에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적게 내고 많은 혜택을 받기 원한다. 이런 요구에 대해 정부는 물가 안정의 일환으로 대학등록금을 동결 내지는 3% 이내에서 인상을 유도하고 있다. 우리 고등교육기관의 절반인 200여 개교가 일반대학이며 85.3%가 사립대학이다. 사립대학들의 재정 압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등록금 인상 억제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런 정부의 임기응변 정책으로는 제대로 된 인재를 육성할 수 없다.

 교육당국은 등록금 안정에 협조하는 대학은 정부가 지원한 예산에 대해 자율적인 집행권한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교과부가 주도한 정책에 충실한 대학들은 재정지원과 더불어 교과부 평가 최우수 대학이 됐지만 이는 대학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안 되는 정책일 뿐이다. 지금 우리 대학들은 동맥경화증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다. 이는 적극적인 외과 수술만이 최선의 대안이다.

서승직 인하대 교수·건축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