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D Virus … 이 바이러스에 대한민국이 무너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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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구제역 바이러스(사진)에 대한민국이 무너졌다. 구제역 발생 100일, 그 사이 죄 없는 소·돼지 340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됐다. 넷 중 한 마리가 땅속에 묻힌 셈이다. 국가적 재앙이다.

 재앙의 첫 요인은 국가의 실패다. 초보적인 매뉴얼은 있었다. 관리 부재로 이조차 제대로 운용되지 못했다. 두 차례 구제역을 겪고 난 뒤인 2003년 발간된 『구제역 백서』는 343쪽에 걸쳐 ▶접종 단계별 시스템 구축 ▶읍·면까지 축산 전문가 배치를 지적했다. 이대로 했다면 구제역이 재앙 규모로 번지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실천이 없었다. 2003년엔 530만 마리분의 백신이 있었다. 지난해 말 보유량은 30만 마리분에 불과했다. 전문가와 인력 부족으로 공무원이 순직하거나 유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바이러스는 진화하는데 방역 체계는 후퇴한 꼴이다.

 일부 축산 농가도 책임을 비켜가기 어렵다. 철저하게 방역하고 청결하게 관리한 축산 농가엔 구제역이 접근하지 못했다. 한 마을이 똘똘 뭉쳐 구제역을 막아낸 사례가 여럿 있다. 자기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는데도 버젓이 돌아다니는 농장주도 있었다. 소·돼지가 사라진 농가의 모습을 감성적으로만 접근한 보도 자세도 문제다. 이런 보도는 일부 농가의 살처분 거부와 보상비 상향지급 요구를 낳는 요인이 됐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다. 장태평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지금의 축산 현실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시라고 생각하자”고 말했다. 폐허에서 새 서울을 일궜듯 대재앙 위에 선진 축산을 건설하자는 제안이다.

◆특별취재팀 = 진세근·이승녕·임미진·허진·채윤경 기자, 박종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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