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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지연의 매력 발전소

대통령 꿈꾼다면, 말하지 말고 보여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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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연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선거 전후로 각 언론은 결과에 대한 예측과 분석을 하느라 법석을 떨곤 한다. 특히 대선 전후로는 그 예측과 분석의 심도가 더 깊어지게 마련이고, 이런 현상은 언론에만 국한된 게 아닌지라 두세 명 이상의 사람이 모인 모든 자리에선 화두가 되곤 한다. 우리 정치사에선 ‘뻔한’ 결과의 대선이 많기는 했으나 예측을 불허한 결과 앞에서 승자의 승인 분석이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닐 때도 있었다. 분석 끝에 논박을 주고받다 보면 논거가 궁해진 말끝은 이렇게 흐려지곤 한다. “그래, 그래서 대통령은 천운이 따라야 한다고 하잖아.” 천운이라…. 민심은 천심이라 했으니 결전의 그날! 무엇이 떠다니던 유권자의 마음을 구름떼처럼 이동하게 하는 것인가. 나는 문뜩 그것이 궁금해져 옛 인터뷰를 뒤적인다.

 2002년 월드컵 함성이 뜨거웠던 그해, 대선을 앞두고 월간중앙에 ‘Election 2002 백지연의 파워인터뷰’를 연재했다. 첫 대상은 이회창 후보. 내 글을 마치 남의 글 읽듯 읽어 내려가던 중 인터뷰의 방점을 찍는 마무리 문장에 눈이 멈춰 선다. ‘검증은 계속되어야 한다’. 지금 다시 읽어 봐도 강한 마무리다. 당시엔 이 후보가 당선되리라는 것을 의심하던 사람이 그리 많지 않던 때였기에 위험성(?) 짙은 마무리였다. 인터뷰는 정치·경제·사회 모든 문제를 넘나들었으나 이 후보 측 캠프가 보여주고자 애썼던 것은 따뜻한 서민적 이미지였다. 그래서 당시 한나라당사에는 앞치마를 두른 이 후보의 캐리커처를 내걸기도 하고, 전교 54등을 한 적도 있다는 성적표를 내놓기도 했었다. 따뜻한 포용력의 리더십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그러한 선거캠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터뷰는 이렇게 마무리돼 있었다.

 ‘1등만 했다 해도 상관없다. 사람들은 혹시 그가 엘리트라는 특권의식으로만 무장된, 그래서 독단적인 생각을 가졌다거나 포용력과 리더십이 부족하지 않을지, 대통령이 될 만한 그릇인지 아닌지를 염려하고 검증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이 인터뷰를 통해 그 답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그 답을 얻지 못했다. 검증은 계속되어야 한다’.

 2002년 8월호를 들춰보니 월드컵 열풍으로 홍조가 만연했던 정몽준 의원에 대한 인터뷰 글에선 또 이런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인터뷰에 최선을 다하려는 빛이 역력했으나 인터뷰를 끝낸 후에도 무언가 잡히지 않는 미진함이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몸을 사리는 것도 지나치면 해가 되는 법.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대선에 나서려 한다면 정 의원은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주 말한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고. 그러나 우리는 그의 개인적 꿈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그가 우리의 꿈을 이뤄 줄 자질이 있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2002년 대선. 예측을 뒤엎고 이회창 후보는 왜 기회를 놓쳤을까. 정몽준 후보는 왜 그런 결론에 직면했던 것일까. 그 두 사람의 패인이 궁금해 묻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유권자의 마음을 끌어들이고 혹 밀어내기도 하는 대선 후보들의 소구점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 것인지가 궁금한 것이다.

 나는 나의 답을 2008년 다트머스대까지 날아가 만난 김용 총장으로부터 찾은 것 같았다. 23년여 인터뷰를 해오면서 단연 최고로 꼽는 인터뷰이가 김용 총장인 것은 그가 말한 단 한 문장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한 문장이 그토록 강력했던 것은 단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 온 그의 삶 자체였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어떤 자리에 오르는 것(what to be)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what to do)를 고민했습니다.”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키워드는 ‘헌신’과 ‘책임감’이었다. (김용 총장과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겠다.)

 그래 이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라면 ‘대통령만 시켜주시면 이렇게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그가 평생을 어떤 목표와 책임감과 헌신으로 살아왔는지를 보여줄 것이 있어야 한다. 준비된 대통령이란 것이 정치구호가 아닌 실재인 사람만이 유권자에겐 진정 매력 있는 후보가 될 것이다. 대선이 내년이다 보니 벌써 누구누구 하며 설왕설래다. 그대 대통령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말하지 말고 보여주어야 한다. 보여줄 삶이 없다면 제발 대선에 나와서 우리를 힘들게 하지 말라.

백지연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