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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사지(死地)에서의 반성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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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본선 8강전>
○·원성진 9단 ●·박정환 9단

제16보(175~187)=백△로 진출해 원성진 9단이 옥쇄로 나온 장면. 사활에 강한 박정환 9단인데 이번 대국에선 유독 대형 사활 문제가 많이 나온다. 이것도 박정환에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175가 좋은 수로 맥을 정확히 짚고 있다. ‘참고도 1’ 백1로 머리를 내밀면 한쪽은 살아올 수 있으나 한 점이 떨어진다. 이 한 점이 떨어지면 바둑을 진다.

 원성진은 176부터 좌충우돌한다. 하지만 탁월한 무용에도 불구하고 구리산에 갇힌 항우처럼 점점 지쳐간다. 북쪽으로 펼쳐진 흑의 포위망은 물샐 틈이 없어 나는 새도 빠져나갈 수 없다. 부득이 178, 176으로 시비를 걸어보지만 견고한 흑진은 틈을 보이지 않는다. 180으로 나가 184 끊자 185의 굳센 연결. 186에도 187의 연결. 박정환의 이 두 수는 꾀를 전혀 부리지 않는 하수 같은 행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가장 확실한 사망선고로 다가온다. ‘참고도 2’도 그냥 지는 길. 오직 다 살리는 길뿐인데 아직은 한 집도 안 보인다. 생각하면 허망하기 짝이 없다. 한때 중앙은 백설이 내린 듯했고 앞날은 환해 보였다. 그러나 딱 한 발 더 깊숙이 들어가면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그 ‘한 발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것이 이 사태를 몰고 왔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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