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농장 개척 2년 만에 … 해외 식량기지서 처음 식용 옥수수 대량 반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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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캄보디아에 개척한 농장에서 기른 식용 옥수수가 대량 반입된다. 주인공은 캄보디아에서 옥수수농장을 운영 중인 충남해외농업자원개발 이우창(42) 대표. 이 대표는 2008년 12월 캄보디아 캄퐁스푸주 위월톤 지역에 ‘코메르씨엔(KOMERCN)’이라는 농업회사를 세우고 1만3000㏊ 규모의 농지에 옥수수를 기르고 있다. 또 주변 농민 1400명과 옥수수협동조합을 만들어 이들이 생산하는 옥수수도 전량 수매한다. 이렇게 생산·수매한 옥수수는 자체 농장과 조합 생산분을 합쳐 한 해 약 85만t. 국내 연간 수요량의 약 10%에 달한다. 충남해외농업자원개발은 대부분을 국내에 식용으로 들여올 계획이다. 그간 해외 식량기지에서 사료용 옥수수가 수입된 적은 있지만 식용 옥수수가 대량으로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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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입량의 대부분은 국내 3위 식품회사 대상이 전분·올리고당 등의 원료로 사용할 예정이다. 대상이 한 해 사용하는 옥수수는 약 50만t이다. 코메르씨엔과 대상 측은 2일 캄보디아 현지에서 정식 구매계약 체결을 위한 현장 조사에 들어갔다. 이 대표는 “2008년 농림수산식품부 및 충청남도 지원으로 처음 캄보디아에 진출한 뒤 2년 반 만에 일군 성과”라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한 2008년 이후 50여 곳의 기업이 해외 농장 개척에 뛰어들었지만 아직 대부분 시범 수입 단계에 그친 상태”라며 “본격적인 곡물 수입이 시작되면 국내 농산물 가격 안정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농장 개척한 이우창 코메르씨엔 대표

충남 아산서 소 키우던 농부
곡물값 폭등 보며 해외로 눈 돌려
땅 넓고 인력 풍부한 캄보디아
농민 조합 결성, 8만5000ha 농사

캄보디아 옥수수 농장을 운영하는 코메르씨엔 이우창 대표가 현지 농장에서 수확한 옥수수를 들어보이고 있다. [충남해외농업자원개발 제공]

시작은 원유(原油)값 급등이었다. 충남 아산시에서 소를 키우던 이우창(42)씨가 해외 농장 개척에 눈을 돌리게 된 배경 말이다. 푸른들 영농조합 소속으로 소 2000마리를 기르던 그는 2007년 하반기에 시작된 곡물가 급등 여파를 생생히 목격했다. 그해 원유가는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섰다. 옥수수·콩이 바이오 연료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국제 곡물 시세가 치솟았고 이듬해 3월부터는 사료가 금값이 됐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사료용 옥수수를 수입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이래선 안 되겠더라고요. 앞으로도 곡물 가격이 어떨지 알 수 없고…. 직접 나가서 농사를 지어 오면 최소한 안정적으로 물량은 확보할 수 있겠다 싶었죠.”

 이듬해 5월 농림수산식품부의 ‘해외 농업 환경조사 사업’에 신청해 캄보디아를 찾았다. 캄보디아를 점찍은 건 기후와 인구 때문이다. 옥수수 농장이 있는 위월톤 지역은 평균 기온이 섭씨 30도 안팎. 건기(11~3월)를 제외하면 한자리에서 한 해 세 차례 옥수수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연해주 같은 지역은 겨울이 길잖아요. 따뜻한 나라가 생산성이 낫다고 본 겁니다.”

 캄보디아 내 곡물 수급 상황이 비교적 여유로운 것도 눈여겨봤다. 캄보디아 국토 면적은 18만1040㎢로 한국(9만9000만㎢)의 약 두 배다. 하지만 인구는 1500만 명이 채 되지 않아 농사 지을 땅이 여유로운 편이다. 자국 내 농산물 수요 때문에 곡물 수출을 제한하고 있는 중국·러시아에 비하면 자유롭게 농장을 개척할 수 있는 환경이다. 1970년대 킬링필드 학살로 전체 인구 중 10∼20대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매력적이라고 분석했다. “농장에서 일할 사람이 많습니다. 아직 주요 산업이 발전하지 않아 농업만 한 수익처도 없거든요.”

 그해 10월 조사내용을 책으로 내고 12월에 회사를 설립했다. 전체 자본금 17억여원 중 8억여원을 농식품부가 저리(연 1.5%, 10년 거치 3년 상환)로 융자해줬다. 동참하는 농민·기업들이 나머지 1억~2억원씩을 댔다. 이씨도 사재 2억원을 보탰다. 코메르씨엔이란 이름은 한국(Korea)과 캄보디아의 옛 이름 크메르(Khmer), 충남의 이니셜(CN)을 합쳐 지었다.

 위월톤은 주민 3만여 명의 시골이다. 저수지 등 관개 시설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옥수수 농장 개척이 시작됐다. 선교사 출신 등 한국인 직원 세 명이 농장 관리를 도왔다. 마을 이장이 빌려준 집에서 한국 직원들이 숙식을 해결했다. 이 대표는 1년에 반은 한국에서, 반은 캄보디아에서 보내며 투자를 유치하고 생산 물량을 점검한다. 이렇게 생산한 옥수수 39t은 지난해 3월 처음 사료용으로 국내에 반입됐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 200여t의 사료용 옥수수를 추가로 들여왔다.

 복병도 있었다. 곰팡이였다. 날씨는 덥고 습한데 제대로 된 건조 시설이 없어 옥수수에 쉽게 곰팡이가 슨 것. 곰팡이에서 나오는 독소 때문에 국내로 들여오지 못하고 버린 옥수수도 적지 않았다. “농장 근처에 건조 창고를 짓고 있어요. 6월에 창고가 완공되면 곰팡이 걱정은 없어집니다.” 충청남도가 건조 시설에 3억9000만원을 지원했다.

 2009년 7월부턴 현지 주민들을 옥수수 농사에 끌어들였다. 함께 조합을 결성한 것이다. 위월톤 지역 주민들은 대개 자급자족을 위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옥수수 종자를 나눠주고 기술을 가르쳐 농사를 짓게 한 다음 옥수수는 전량 수매하는 조건이다. 대신 종자 값과 농기계 대여료 등을 옥수수 수매료에서 제한다. “옥수수를 기르기만 하면 구매까지 해준다”는 소문이 나자 조합원은 순식간에 불었다. 현재 코메르씨엔 소속 조합원은 1400여 명. 이들이 8만5000ha에서 한 해 수확하는 옥수수는 85만t(2모작 기준)가량으로 추산된다. 농식품부 국제협력국 조래청 사무관은 “직접 경작지를 구매해 농사를 짓는 것은 안정적이지만 투자 부담이 크다”며 “조합을 통해 곡물을 수매하는 방식으로 물량을 확보한 것이 위험을 분산한 참신한 시도”라고 말했다.

 대상과 식용 옥수수 공급 계약이 체결되면 이르면 이달 하순에 첫 수입 물량이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옥수수가 수확되는 6월엔 본격적인 수입이 시작된다. 대상이 현지 농장을 직접 찾을 정도로 적극성을 보이는 이유는 유전자가 변형되지 않은(non-GMO) 옥수수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대상 전략조달팀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GMO(유전자변형농산물)가 확산되면서 non-GMO 물량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안정적인 가격과 물량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현지 생산물의 품질을 검토한 뒤 최종 계약을 하겠지만 현재로선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설령 대상과 계약이 성사되지 않아도 옥수수의 국내 반입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가격 경쟁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현지의 옥수수 생산원가는 t당 67달러, 이를 한국으로 나르는 물류비는 t당 90달러 정도다. 총 도입단가는 180달러 안팎이면 된다. 지난달 25일 국제 옥수수 시세는 t당 280달러였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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