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아파트 아무 소용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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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기자]

삼면이 녹지로 둘러싸인 서울시 대표 전원주거지 은평뉴타운. 서울시가 2000년대 초 야심차게 추진한 뉴타운 사업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다.

시범뉴타운으로 지정된 후 SH공사가 시행을 맡아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 벌써 1지구 입주가 시작된 지 2년이 훌쩍 넘었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다운 주거환경을 가진 데다 내로라 하는 대형 건설업체들이 시공을 맡아 분양 때마다 인기몰이를 톡톡히 했다.

주거편의시설도 어느 정도 갖춰진 지금, 여유롭고 쾌적한 전원생활을 즐기며 행복해야 할 입주민들은 속이 터진다. 생각지도 못한 ‘큰 문제’가 있어서다.

2008년 6월 첫 입주가 시작되면서 입주민들은 교통이나 교육여건에 대한 걱정을 안고 이사를 왔다. 하지만 대규모 주거지 조성 초기에 의례히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라 여겼고 주거여건은 점점 나아졌다.

벽에 고드름 맺히고 가전제품 얼어붙어

문제는 집 안에 있었다. 2008년 7월 7단지 푸르지오에 입주한 A씨는 “여름에 이사를 했는데 한철 내내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될 만큼 시원해서 이사하길 잘했다며 식구들이 모두 좋아했다”고 말했다.

여름에 에어컨이 필요 없는 시원함은 그 해 겨울이 되자 매섭게 변했다. 새 아파트는 의례히 한차례씩 겪는 문제라는 결로ㆍ결빙이 상상하지 못한 심각한 수준이었다.

▲ 심각한 결빙 현상으로 벽에 고드름이 맺힌 모습.

벽은 물이 흘러내리다 못해 얼어붙었고 발코니에 고드름이 생겼다. 세탁기가 얼어 빨래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얼어붙은 가전제품은 정전까지 일으켰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하자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3단지 아이파크에 사는 B씨는 “그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심각한 결로ㆍ결빙에 어이가 없었지만 고치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입주하고 세번째 맞는 올 겨울에도 고통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아파트를 고를 때 브랜드의 영향은 크다. 일반적으로 주택 수요자들은 대형 건설업체가 짓는 이른바 브랜드 아파트는 ‘튼튼’할 것이라고 믿는다.

건설업체마다 고유의 이름까지 붙이며 내세우는 입주 후 서비스도 브랜드 아파트 선호도를 높이는 요소 중 하나다. 그래서 중소업체가 지은 아파트보다 수천만원 비싸도 수요자들은 브랜드 아파트를 선택한다.

실망스러운 대형 건설사 입주 후 서비스

하지만 은평뉴타운 입주민들은 혀를 내두른다. 튼튼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복도 천장이 갈라지고 침실 3개 중 2개가 난방이 들어오지 않았다. 공사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 집안 뿐 아니라 공용복도 벽에도 얼음이 얼었다.

하지만 시공사는 SH공사 탓을, SH공사는 시공사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보수를 미뤘고 심지어 하자의 원인을 입주민의 탓으로 돌렸다.

1단지 롯데캐슬에 사는 C씨는 “생활습관의 문제라고 했다. 하루 2시간씩 환기를 시켜야 한다고 해서 영하 15도 날씨에도 꼬박꼬박 문을 열어뒀다. 하지만 결로현상이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견디다 못한 입주민들이 항의해도 별로 반응이 없다. 건축관련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알아 들을 수 없는 어려운 건축용어를 쓰며 ‘어쩔 수 없는 하자’라고도 했다.

▲ 얼었던 벽이 녹으면서 곰팡이가 핀 모습.


S건설에 다니는 4단지 아이파크 입주민 D씨는 “어느 날 퇴근해서 돌아오니 아내가 두께가 10㎝는 되어 보이는 두꺼운 건축관련 책을 보고 있었다. 하자 보수 문제로 시공사 직원에게 항의하다가 무시를 당했다며 건축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창문을 뒤집어 달았는데 도대체 어떤 공법을 썼길래 어쩔 수 없는 하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반상회에 나가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입주지원센터 직원들의 고압적 태도에 화를 냈다. 나도 건설회사에 다니지만 정도가 지나치다”고 전했다.

시공사들도 나름의 속사정은 있다. SH공사, 즉 정부가 조성했기 때문에 민간업체가 조성하는 아파트와는 공사비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H건설 관계자는 “시공사의 경우 정해진 공사비로 자재 구입부터 건축, 하자보수까지 모두 해야 하는데 공사비가 적어 민간단지보다는 일 처리가 원활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SH공사의 입장은 다르다. 아파트를 지은 시공사가 정해진 공사비로 하자 보수까지 담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자 보수를 위해서 추가 비용을 더 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SH공사ㆍ시공사간 책임 미루기에 피해 커져

입주 2년이 지난 올 겨울 은평뉴타운 입주민들은 더 속이 탄다. 일반적으로 새 아파트는 입주 2년까지 무상으로 하자 보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6단지 푸르지오에 사는 E씨는 “입주 후 2년 내내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더니 이제는 하자보수기간이 끝났다고 하니 분하고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1단지 롯데캐슬에 사는 C씨도 “분양 당시만 해도 서울시가 미래형 도시라며 그렇게 내세우더니만 이건 완전 냉동 도시”라며 “맞춤 서비스네 찾아가는 서비스네 그렇게 홍보해 대던 대형 건설업체들의 고약한 일처리에도 화를 누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은평뉴타운 내 전용 84㎡형의 경우 평균 분양가가 3억5000만원선이다. 월급 200만원을 받는 근로자가 한 달에 월급의 절반인 100만원씩 30년을 모아야 하는 금액이다. 집 한 채가 사실상 전 재산인 셈이다.

서울시를 믿고 브랜드 아파트를 믿은 은평뉴타운 입주민들은 오늘도 속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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