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경제 view &] 육아시설을 은퇴 노인들에게 맡기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

최근 무료 급식 논쟁과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자살 사건이 잇따라 이어지면서 다양한 복지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선진국들도 과거에 만들었던 복지제도가 낳은 재정적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유엔이 정한 기준에 따르면 노인은 65세 이상 인구를 의미한다.

 이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 20% 이상이면 ‘후기 고령 사회 또는 초고령 사회’라고 정한 바 있다.

 영국·독일·프랑스 같은 구미 선진국은 1970년대에 고령 사회가 되었고, 일본은 70년대에 고령화 사회가 되었다가 94년에 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우리나라도 2026년께에는 초고령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출산율이다. 60년대 6명 선이던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2009년 1.15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G7 국가의 합계 출산율은 60년대 2.7명 수준에서 80년대 1.5명으로 감소한 뒤 최근까지 이 수준을 유지한다.

 이대로라면 82년에서 2000년 사이에 태어난 소위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가 중·장년이 되는 2030년에는 노인 가구주가 10가구 중 3가구에 이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리도 지금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곧 심각한 상황에 다다를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흔히 저출산의 원인으로 육아를 해결해 줄 시설과 경제적 부담이 꼽힌다. 맞벌이를 해야만 가정 경제가 유지되는 현 상황에서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다. 건강한 양육과 제대로 된 교육, 그리고 비용 절감이 보장된다면 저출산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다. 현 단계에서 정부가 내놓는 해결 방안은 양육비 등 일부를 지원하는 정도다. 하지만 충분치 않아 보인다. 그것보다 정부와 지자체가 동사무소나 주민회관 등에 공간을 갖추고 24시간 마음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양육시설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여기에 조기 은퇴한 40대 중반~70대 초반의 사람들을 투입해 다음 세대를 기르도록 하는 것이다.

 학력과 인성 등 일정 요건을 갖춘 사람들을 선발해 훈련시켜 교육자로 활용하면 양육 문제도 해결되고, 노인 일자리도 대거 확보할 수 있다. 정부로선 일자리와 저출산의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묘수’다.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은퇴자라면 지역사회를 위해 무료로 봉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평생 쌓아온 지혜와 경륜을 후손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 기회가 주어지면 남은 여생도 보람과 긍정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또 무엇보다 이들은 스스로의 자식을 키워본 경험이 풍부하다. 처음 아이를 키우느라 어쩔 줄 몰라 하는 젊은 부모들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인인력을 활용하는 것인 만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부담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현재 거동이 불편하지 않은 독거노인과 보육원을 하나로 통합하는 시설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독거노인은 외롭지 않은 생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고,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기댈 곳이 생겨 소외감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이들이 일할 수 있는 텃밭이나 농장을 함께 꾸미고 그곳에서 나온 농산물을 도시 소비자에게 판다면 일정한 수익을 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노인 인구 중에는 젊은 시절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분이 많기에 충분히 실현 가능한 구상이다. 경제적으로 여유는 있지만 혼자 사는 삶이 외로운 분들을 위해서라도 이 같은 시설은 꼭 필요하다. 저출산과 고령화, 모두 개인에게 맡겨 놓을 수만은 없는 문제다. ‘복지냐 성장이냐’ 하는 논쟁보다는 어떻게 하면 생산성 있는 복지를 이룰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