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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44) “세계 판도를 바꾼 거대한 착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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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 비즈니스맨이 베이징에 출장 갑니다. 첫 중국 길 입니다. 동양의 이국적 풍격을 잔뜩 기대하고 비행기에 오릅니다.

그러나 베이징 비행장에 도착해서는 실망합니다. 별로 다른 게 없었지요. 비행장이야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비슷합니다. 파트너 회사 직원이 가져온 BMW를 타고 시내로 들어갑니다. 힐튼 호텔에 묵습니다. 역시 다르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체인이니까요.

호텔이 제공하는 '미국식 조찬'을 먹고, 금융가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합니다. 영어가 통합니다. 파트너들은 모두 미국 유학을 다녀 왔기에 별 문제를 못느낍니다. 그는 저녁에 중국식 식사를 합니다. 이곳 식사는 뉴욕 차이나타운을 연상케 할 뿐입니다. 이튿날 그는 침대위에 10위안짜리 한 장을 팁으로 놓고 채크아웃을 하지요.

이 비즈니스맨에게 베이징과 뉴욕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중국이 경제가 발전하면서 점점 서구화되고 있다."

마틴 자크는 중국에 대한 서구의 인식을 얘기하며 이 비즈니스맨의 사례를 예로 듭니다. 서구 사람들은 '근대화는 곧 서구화'라는 오류에 빠져 있다는 것이지요. 그는 속을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겉으로는 비행장이 같고, 호텔이 같을 지라도 속으로는 다르다는 것이지요. 일본은 서유럽과 비슷하지만 속으로는 그대로의 일본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 산다고 해도 생각이나 사고가 미국과 같아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발전하면 할 수록 서구로부터 더 멀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근대화가 곧 서구화로 가는 '편도티켓'은 아니라는 거죠.

마틴 자크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이라는 책의 출발점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13억의 인구 대국 중국은 분명 다른 근대화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그 근대화의 결과도 다르게 나타나고, 세계에 미치는 영향도 다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중국은 전통의 뿌리가 깊은 나라입니다. 중국인들은 국가보다는 오히려 문명을 더 중시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민'이라는 생각이 덜합니다. 대신 '용의 후손(龍的傳人)'이라고 여깁니다. 중국 문명의 자손이라는 겁니다. 그들에게 국가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존재입니다. 5000년 중국의 역사에서 왕조는 수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졌습니다. 지금의 공산당 체제 역시 길게 보면 그 수 많은 왕조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들은 '하나의 문명, 다(多)체제'에 익숙합니다. 그러기에 홍콩과 대만에 대해 '일국양제(一國兩制)'을 제시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의 통일의식과는 많이 다르지요.

그런 중국이 근대화된다고 해서 바로 서구화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대단한 착각일 뿐입니다.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조지 W. 부시의 말이 여지없이 틀린 이유입니다. 깔보고 착각하고, 그렇게 10년을 보내는 사이 중국은 미국의 입지를 파고들고 있습니다. 중국의 부상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역사 문화 전통까지 두루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서방과 중국의 차이점, 국가(State)에서 시작됩니다.

서구에서 국가는 사회를 이루는 한 직능 기구입니다. 견제를 받지요. 역사가 그랬습니다. 왕권은 교회로부터 시달려야 했습니다. 시민들이 대들었고, 또 의회가 왕을 내쫓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도 국가는 다양한 견제를 받고 있고, 행동에 제약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중국은 다릅니다. 부모가 자식을 품듯 백성들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게 국가의 정치 이상이었습니다. 모든 인재들의 꿈은 유교경전을 외워 과거에 합격, 관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유교 정치논리입니다. 지금 공산당 역시 입만 열면 '웨이런민푸우(爲人民服務)!'라고 외칩니다.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게 당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지요.

국가는 그 문화를 실천하기도 했지만, 이를 확대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심지어 주변 국가를 무력으로 정복하고도 '문명의 확대'라고 해석합니다. 그들은 지네들이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입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들으면 환장할 얘기지요. 그들은 일본과 충돌했던 '조어도 사태'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지 모릅니다.

국가에 대한 견제? 있을 수 없습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다른 계급이나 집단, 기관과 권력을 한 번도 나눠본 적이 없지요. 국가가 법을 만들고, 시행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곤장을 쳐댔습니다. 지금도 그 논리는 살아있습니다. 누가 감히 공산당 권력을 탐하겠습니까? 서구식 민주주의, 중국에서는 택도 없는 일입니다.

서구의 상인들은 혁명을 통해 권력을 나눠가졌습니다. 그러나 중국 상인들은 어떻게 하면 '관(官)'과 결탁할 것인가를 연구했지요. 이렇게 정치 경제 구도는 다릅니다. 지금 중국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에서 비즈니스하시는 분들은 이 말이 뭘 뜻하는지 금방 아실 겝니다.

중국은 그동안 서방 세계가 구축했던 자유시장 체제에 수렴해 왔습니다. 그 체제에서 성장했으니까요. 그러나 중국이 성장하면 할 수록 수렴이 아닌 발산 현상이 뚜렷해 질 것입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 첫 마당은 동아시아입니다. 그들의 피에 흐르는 중화(中華)DNA가 첫 발산될 곳이 바로 이 땅 아시아입니다.

마틴 자크는 이 대목에서 '동아시아의 조공질서 회복'을 얘기했습니다.

조공의 부활? 뭔소리일까요?
다음 칼럼에 계속됩니다.

아, 빼먹은 게 하나 있네요. 베이징을 방문했던 그 미국 비즈니스맨, 침대에 팁을 놓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중국에는 팁 문화가 없기 때문이지요. 중국의 속 문화를 몰랐기에 괜히 10위안만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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