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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병국 장관의 두 가지 과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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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정치인은 업적(legacy)을 남긴다. 그래서 대통령은 임기 중에도 후세 역사가와 국민의 평가가 어떨지 고심한다. 정부 부처를 책임진 장관들도 업적으로 기억된다.
프랑스는 문화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나라다. 그래선지 훌륭한 업적을 남긴 문화부 장관으로 두 명이 거론된다. 우파였던 앙드레 말로(재임기간 1959~69년)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문화적 권리’를 구현한 것으로 기억된다. 좌파엔 자크 랑(재임기간 1988~92년) 장관이 있다.

그는 “경제와 문화의 전장(戰場)은 같다”며 문화산업에 대한 지원책을 실천했다. 공직자를 평가할 때는 좌·우파를 떠나 어떤 업적을 남겼느냐가 역시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최근 취임한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많다. 정 장관이 폭넓은 인맥과 전문성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 장관이 해결할 첫 번째 과제로 문화예술인들의 복지 문제를 꼽고 싶다. 최근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생활고와 지병으로 숨진 뒤 문화예술인들이 느끼는 허탈감은 작지 않다. 17일 열린 대국민 업무보고회에선 생존을 위협하는 창작 현실이 도마에 올랐다.

연극배우 박정자씨는 “예술 전공자들은 갈 곳이 없어 졸업과 함께 실업자 신세가 된다”고 한탄했다. 이에 정 장관은 “지금 제기되는 문제의 80%가량이 10년 전과 비슷한 걸 보면서 자괴감을 느낀다”며 “최소한 4대 보험 혜택이라도 보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문화예술인들이 굶주리는 사회에서 문화적 풍요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정 장관의 두 번째 과제는 문화를 통한 사회통합 모델을 마련하는 것이다. 문화는 정파·사회 계층, 종교 사이의 갈등을 완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인간 감정을 순화하고, 남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 내는 힘이다. 얼마 전 작고한 박완서 선생의 작품들이 좋은 예다. 그 역시 개인적인 정파성이 없지 않았겠지만 그 누구도 그의 작품을 이데올로기로 재단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에서 문화는 갈등을 완화하기보다 증폭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최근 빈발하는 종교 간 갈등이 단적인 사례다. 문화부는 최근 60쪽 분량의 ‘공직자 종교차별 예방교육 만화’를 제작해 배포했다. 불교계가 종교 편향을 문제 삼자 내놓은 조치다. 그러자 기독교 일각에서는 만화책이 한국 교회를 은근히 공격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문화부가 갈등 중재자로서의 권위와 힘을 잃었다는 방증이다.

정병국 장관은 어떤 업적을 남길 것인가. 정 장관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선심성·과시용 행사를 최대한 줄이되 문화복지와 사회통합을 위한 손길에 소홀함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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