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들 “몸상태 공개를” 기로에 선 잡스의 비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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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리스크’. 투자자와 협력회사 경영자 등을 애달게 하는 애플의 최대 불확실성이다. 췌장암으로 세 번째 병가 중인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56)의 건강상태에 관한 정보가 시시각각 바뀌고 있는 탓이다.

12일 애플 경영진은 “잡스가 요양 중 중요한 회사 일을 직접 처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닷새 뒤인 17일 미국 내셔널 인콰이어러지는 ‘6주 시한부설’을 보도했다. 신문은 “최근 입수한 잡스의 사진을 본 의사들이 ‘정확하게 검진해봐야 알겠지만 사진만 놓고 봤을 때 그는 6주일밖에 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직후 애플 주가는 1.33% 미끄러졌다. 올 1월 17일 세 번째 병가 발표 이후 가장 큰 주가 하락이었다.

타블로이드 신문인 인콰이어러지 보도도 얼마 가지 못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신빙성 논란이 벌어졌다. 보도 내용 중에 잡스가 일본 혼다의 소형 차량인 시빅을 타고 움직였다는 대목이 문제가 됐다. 다른 매체들은 “애플 CEO가 소형 차량인 시빅을 탄 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17일 잡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회동해 저녁을 같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자리 창출 방안을 논하는 자리였다. 게다가 요즘 미국 정보기술(IT) 업계 거물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에릭 슈밋 구글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설립자 겸 CEO 등이었다.

백악관은 잡스의 건강상태에 대해 침묵하다 논란이 커지자 18일 그의 뒷모습만 보인 사진을 내놓았다. 사진 속 잡스는 트레이드 마크인 터틀넥 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바로 왼쪽 좌석에 앉아 있었고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건배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참석으로 6주 시한부설은 어느 정도 불식되는 듯하다. 하지만 “한결 성글어진 머리카락 등에 비춰 건강상태가 좋아보인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AP통신은 18일 보도했다. 이날 애플 주가는 2% 넘게 떨어졌다. 여전히 애플 주주들이 우려하는 잡스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셈이다.

기관투자가들 반발 커
결국 모든 관심이 애플의 주주총회에 쏠리기 시작했다. 23일 오전 10시(미국시간) 캘리포니아 쿠페르티노 애플 본사에서 주주총회가 열린다. 지금까지 애플 주총은 신흥종교 부흥회와 비슷했다. 잡스가 교주처럼 유장하고 메시아적인 말투로 경영성과를 보고하는 와중에 주주들이 박수로 화답하는 분위기였다.

영국 BBC방송은 “올해 주총장이 격전의 장으로 돌변할 수도 있을 듯하다”고 17일 예측했다. 바로 ‘잡스의 건강상태와 경영승계 프로그램’ 건 때문이다. 발단은 한 연기금의 요구였다. 미국 주요 연기금 가운데 하나인 건설노동조합(LIUNA)기금이 지난달 말 “잡스 몸상태가 어떤지 그리고 애플이 경영권 승계를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워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금은 애플의 경영승계 계획안을 공개하는 방안을 주총에서 표결해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건설노동조합기금이 쥐고 있는 애플 지분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10대 기관투자가 주주 반열에 끼지 못한다. 임시 CEO 역할을 하는 최고운영책임자(COO) 팀 쿡은 처음에 건설노동조합기금을 무시하는 전략을 택했다. 하지만 잡스 건강상태에 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세계 최대 기관투자가 컨설팅회사인 미국 ‘기관투자가주주서비스(IIS)’가 건설노동조합기금의 제안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IIS는 “애플이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에 비춰 (일부 기관투자가들이)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 공개를 요구하는 일은 아주 정당하다”며 “기관투자가들은 주총에서 승계 프로그램 공개 쪽에 투표하는 게 타당하다”고 발표했다. IIS는 펀드가 아니지만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컨설팅 회사다.

애플 경영진은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임시 CEO인 쿡은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만 경쟁회사가 후보자를 스카우트해갈 수 있어 공개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며 “주주들이 프로그램 공개를 반대하는 쪽에 투표해주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IT 마케팅 전략가인 레지스 매키너는 최근 WSJ와 인터뷰에서 “애플 경영진이 표결에서 지면 자연스럽게 잡스의 건강상태와 후계자가 드러날 것”이라며 “잡스와 애플이 지금까지 고수한 신비주의 전략도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잡스의 건강상태는 국내 삼성전자 주가 흐름에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삼성전자는 IT 부품 50억 달러(약 5조6000억원)어치를 애플에 팔았다.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액의 3.6% 선이다. 올해는 75억 달러 선에 이를 전망이다. 반면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삼성과 애플이 경쟁 관계다. 주총장에서 “잡스의 건강이 나쁜 것으로 드러나면 애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삼성전자 주가 변동성도 증폭될 수 있다”고 국내 애널리스트들은 말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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