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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돌] 세계인의 두뇌 스포츠 왜 한·중·일 리그로 그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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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호주의 여성 심리학자 캐서린 리즈가 바둑을 “위대한 지적 모험”이라고 갈파한 이래 서구사회에서도 바둑은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게임”으로 칭송 받는다. 미국의 한 바둑광은 “동양과 서양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지만 바둑을 두고 있으면 그 강을 건너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바둑 때문에 이혼 당했다.

명칭

중국 ‘웨이치’ 일본 ‘고’
바둑이름부터 통일해야

한국은 바둑이 예능에서 스포츠로 탈바꿈했지만 일본에선 여전히 자신들의 3대 전통문화로 가부키, 스모, 바둑을 꼽는다. 한국에선 바둑이지만 중국은 웨이치(圍棋), 일본은 고(Go)라 불리는, 아직은 정체성에서조차 혼돈을 겪고 있는 바둑-그 세계화는 어떤 경로로 어디까지 진행된 것일까. 1936년 일본 대신 고야마 이치로(훗날 총리)와 독일의 수학자 듀발 박사가 전보바둑을 둔다. 이 유명한 바둑은 세 달쯤 끌며 바둑의 존재를 널리 알렸다. 45년 후 일본에서 명인이 된 조치훈 9단과 ‘순국산’으로 인기 높던 서봉수 9단은 전화바둑을 둔다. 광화문에 대형 바둑판을 설치하고 관중에게 직접 해설했다. 지금은 인터넷이 등장하며 지구 건너편 사람과도 쉽게 바둑을 둔다. 5000년 된 바둑은 흑과 백으로만 되어 있어 최신의 인터넷과 그렇게 궁합이 잘 맞을 수 없다. 바둑은 인공지능 개발에도 최적이다. 인터넷이 사람을 이길 수 있느냐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이지만 1970년대 미국에서 먼저 시작된 인터넷의 바둑실력은 이미 아마추어 유단자 수준까지 왔다(아이로니컬하게도 현재 인터넷의 세계 최강자는 북한의 ‘은별’이다).

 현재 일본에 본부를 둔 국제바둑연맹(IGF)에 등록된 바둑협회를 지닌 나라는 총 71개국. 대륙별로는 유럽이 35개국으로 거의 모든 나라가 바둑을 두고 있고 대회 수도 제일 많다. 일례로 독일에서만 한 해 50여 번의 대회가 치러진다. 아시아는 17개국. 이스라엘에선 바둑이 제법 인기지만 아랍권은 인도네시아가 유일하며 중동의 아랍국가는 단 한 나라도 바둑을 두지 않는다.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바둑 종목이 밀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메리카는 15개국, 오세아니아 2개국, 아프리카 2개국(남아공·마다가스카르)이다.

한·중·일 규칙도 제각각
국제 표준화 협상 시급

 80년대 이래 초창기 바둑 보급은 전적으로 일본이 담당했고 바둑용어도 일본어가 주로 쓰인다. 한국이 세계 최강으로 발돋음하면서 최근엔 한국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다. 한국기원이 주도하는 프로 쪽을 보면 독일엔 여류 국수였던 윤영선이 독일 바둑팬과 결혼하며 바둑 전도사로 전국을 누비고 있고 미국엔 김명완, 호주엔 안영길과 유경민, 헝가리엔 김성래·이영신·고주연 3명의 프로가 본부를 차려놓고 유럽 전역에 한국 바둑을 알리고 있다. 또 베트남엔 이강욱이 불모지를 개척하며 바둑의 대부로 자리 잡았다.

기구

프로·아마 협회 합치고
힘 있는 세계연맹 만들자

 아마바둑협회가 주도하는 아마추어 쪽도 스페인·네덜란드·필리핀·태국 등 7개국에 파견 기사를 내보내고 있고 올해는 더 많은 기사들을 보낼 계획이다. 또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영어 바둑사이트인 W-바둑(wbaduk.com)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교육과 실전 등 세계바둑의 중심 창구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바둑 세계화는 아직 멀었다. 밖이 아니라 내부가 더 큰 문제다. 바둑이 글로벌 지적 게임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바둑의 중심이라 할 한·중·일 내부 가 움직여야 한다.

 첫째, 바둑용어의 통합이다. 우선 고(GO), 웨이치(WEICHI), 바둑(BADUK) 중 어느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둘째, 바둑 룰의 통합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중국룰로 치러졌다. 한국에 오면 한국룰로 대회를 하고 일본에 가면 일본룰을 따라야 한다. 한국룰은 일본룰과 거의 같으니 일본과 중국이 누군가 양보를 해야 한다.

 셋째, 국내에서도 프로의 한국기원과 아마의 아마바둑협회가 통합되어야 한다. 세계 바둑은 새로운 강국인 중국과 함께 갈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유명무실한 IGF 대신 중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계연맹이 모색되어야 한다. 중국은 바둑의 종주국이고 일본은 현대바둑의 종주국을 자처하며 양보하지 않고 있으니 한국이 나서서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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