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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면에 정성껏 발라낸 살점 얹어~ 니지루에 적시면 침이 꼴깍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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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호 04면

차 안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일본인이 가장 선호하는 생선은?”이란 질문에 일행이 참치와 뱀장어 파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설왕설래가 계속되자 관계자가 “도미”라는 답을 내놓는다. 도미는 경사스러운 날에 먹는 생선으로 도미 밥이나 도미 소면으로 유명하다. 일본인들 사이에선 “썩어도 도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애정이 깊다고 한다.
그런데 도미 밥은 상상이 되지만 국내의 생선 국수를 상상하는 사람들과 물회를 주장하는 사람들로 갈려 또 한번 설전이 시작된 것이다. 관계자의 판정을 묻자 대답은 참치와 뱀장어처럼 둘 다 “아니요”다.

일본 가다 - 에히메(愛媛) 첫 번째 이야기- 도미 소면

일본인이 가장 선호하는 생선, 도미
에히메(愛媛) 명물 도미 소면의 참맛을 알기 위해서는 일단 도미에 담긴 의미를 알아야 한다. ‘간스이(丸水)’ 사장이자 주방장인 도이 다카시(土居孝史)의 설명은 이랬다.도미가 각광받기 시작한 시기는 에도 시대였다. 당시 도미의 비늘 색인 붉은색은 귀족의 색이었다. 멋 부리기 좋아하는 사무라이들이 선호하며 ‘생선의 왕’이란 그럴싸한 별명까지 붙였다. 일약 국민들이 선망하는 생선으로 등극했다. 여기에 도미의 일본어 발음 ‘타이’가 경사스럽다는 뜻의 ‘메데타이(めでたい)’를 연상시킨다. 덕분에 축하의 의미도 챙기고 더불어 한껏 세를 과시하고 싶은 잔칫날, 이보다 좋은 음식이 없었을 터이다.

이 정도 의미로도 부족함이 없건만 3대 온천, 3대 건물 등 ‘3’이란 숫자를 숭배하는 일본에서 건강을 기원하는 국수까지 합쳐져 경사·축하·건강이라는 세 박자가 결합된 도미 소면이 탄생한 셈이다. 설명이 끝나자 최대 관심사인 도미 소면의 모양을 확인할 순간이 왔다. 버스에서의 일화를 들은 사장이 상으로 몸을 바싹 붙이는 일행을 보며 “늦었다가는 큰일 나겠다”며 주방에 신호를 보낸다. 큰 몸집의 도미에 합당한 대형 접시가 상에 놓이는 순간…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일행 모두 당황한 기색이다. 도미 소면에 소면이 안 보인다. 이리저리 접시를 둘러보던 허영만 화백이 사장을 빤히 쳐다본다. 사장은 “비밀의 열쇠는 바로 도미 밑에 깔려 있는 고명에 있다”며 그제야 빙그레 웃는다.

파·계란지단·버섯을 들춰내자 곱게 쌓인 흰 눈처럼 소담스럽게 담긴 소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면이 불어 맛을 해친단다.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삶은 도미의 살점을 정성스럽게 발라 소면에 얹고 니지루(煮汁)에 적셔 먹으면 된다. 여기서 니지루는 도미와 소면이란 단조롭고 싱거운 조합에 입체적인 맛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다. 소바의 쓰유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물·간장·미린을 기본으로 도미 뼈와 기타 생선 그리고 야채를 넣어 푹 끓인 육수의 일종이다. 도미를 삶을 때 사용하며 졸아든 니지루는 다시지루(出し汁-가쓰오부시·다시마·멸치 등을 끓인 국물)에 희석시켜 소면에 뿌려 먹는다.

이때 맛과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파·지단·버섯을 함께 넣으면 좋다. 자칫 생선 비린내에 대한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에히메 근처 세토우치(瀬戸内)의 신선한 도미만 사용했으니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맛의 핵심을 찾은 허 화백이 “니지루가 달고 짜지 않아 도미 소면 한 접시는 거뜬히 먹겠다”며 연신 ‘후루룩’ 도미가 얹힌 소면을 넘긴다. 양질의 단백질이 꽉 찬 도미 살점의 담백한 풍미와 부드럽고 쫄깃한 소면의 식감만으로도 이미 별미이건만, 여기에 적당히 간을 더해주는 니지루가 합쳐져 천하일미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제 모양은 관심 밖이라는 듯 식탐에 빠진 일행 7~8명이 내는 ‘후루룩’ 소리가 리듬을 타며 경쾌한 악기처럼 홀 안에 울려 퍼진다. 사장도 신명 나서 살점 발라내기에 여념이 없다.

붕어빵의 원래 이름은 도미빵
앞서 말했듯 국내에도 도미 소면과 같은 부류의 음식들로 생선 국수와 물회가 있다. 생선 국수는 민물고기를 매운탕과 비슷한 양념에 푹 고은 후 소면을 넣어 먹는 충청도 내륙 지방의 별미다. 보양식으로도 유명하다. 물회는 말 그대로 양념한 국물에 회를 썰어 넣는 바다 내음 물씬 풍기는 음식이다. 강원도에서는 여기에 소면이나 밥을 말아먹는 것을 선호한다. 생선과 국수를 함께 먹는 것 이외의 차이점으로는 일본의 경우 각각 독립적으로 조리된 생선과 소면을 개별적으로 담아 준비된 장국물에 적셔 먹는다. 하지만 한국은 찌개와 마찬가지로 육수나 국물에 한데 넣어 먹는다.

한편 붕어빵의 정체는 원래 도미빵이라는 사실이 재미있다. 국내 붕어빵의 유래는 일본이며 ‘타이야키(たいき)’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생선 모양이 도미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미는 국내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비싼 어종에 속한다. 하여 선호하는 생선 1순위란 ‘자주 먹는다’는 뜻이 아니라 ‘먹고 싶다’는 그들의 바람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다.


*본 기획은 일본자치체국제화협회 클레어(Clair)와 한진관광의 후원으로 2년간 일본 각지를 방문해 다양한 요리 그리고 자연을 체험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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