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뒤에서 21년 … 롯데 신동빈 체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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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오른쪽)과 차남 신동빈 회장.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아버지와 이야기할 땐 절대 끼어들지 않는다. 급하게 화를 내지도 않는다. 늘 겸손한 자세로 임한다. 본사에 VIP용 엘리베이터가 없어 임직원들과 함께 만원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해외출장 때도 여행가방을 비서에게 맡기지 않는다. 별다른 취미도 없다. 재계 총수 모임 때 마지못해 나가는 골프 라운드에서는 100타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신동빈(56) 롯데 부회장 얘기다. 그가 10일 재계 5위 롯데그룹 회장이 됐다. 1997년 부회장을 맡은 지 14년 만이다. 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한국 롯데그룹에 발을 들여놓은 지 21년 만이다. 아버지 신격호(89) 회장이 1946년 일본 롯데를 창업하고, 67년 롯데제과로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롯데는 2세 전면 경영시대를 열었다.

 신격호 회장은 그룹 총괄회장에 올랐다. 홀수 달엔 한국, 짝수 달엔 일본을 오가며 ‘셔틀 경영’을 해 온 신 총괄회장은 예전과 똑같이 양국에서 보고를 받고 경영 현안을 직접 챙기게 된다. 그룹 관계자는 신동빈 부회장의 회장 승격에 대해 “커진 그룹 규모와 활발해진 대외 활동으로 그에 걸맞은 직책이 절실했다”고 설명했다. 그룹 규모가 커졌는데 2세 오너이자 현업을 관장하는 신동빈 회장이 부회장으로 남아 있는 것은 다른 그룹과도 위상이 안 맞는다는 판단이다. 이 관계자는 또 “한국과 일본 롯데를 신격호 회장이 총괄하되, 한국 롯데는 신동빈 회장이 맡는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한국 롯데는 신동빈 회장 색깔이 더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겸손함 속에서도 사업적으로는 매우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거침없는 기업 인수합병과 신사업 추진으로 안정지향적이던 롯데의 DNA를 바꿔놨다는 평가다. 일년에 절반은 해외에서 보낸다. “2018년까지 매출 200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자”는 ‘롯데 2018 비전’도 그가 주도해 마련했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이 아버지의 지론인 ‘거화취실(去華就實·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을 배제하고 내실을 지향한다)’을 어떤 형태로 이어갈지가 관심이다.

 단기 실적에 연연하지 않는 점은 아버지를 닮았다. 초기 실적이 안 좋아도 “나는 몇 년 더 걸릴 것으로 본다”며 뚝심 있는 투자를 주문하는 스타일이다. 흑자로 돌아선 기업형 수퍼마켓(SSM)과 홈쇼핑, 인터넷 사업이 그런 경우다. 쉽게 화내지 않는다. 최근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듣고는 “그러냐, 알았다”는 반응만 보였을 뿐이다. 하지만 글로벌·현장 중시를 강조할 땐 얼굴을 붉힌다. 지난해 “해외 지점장들 편하자고 한국인을 운전기사로 쓰면 어떻게 현지 사회를 이해하겠느냐”는 불호령을 내렸다.

 공격경영 와중에 내실을 추구하는 것은 아버지와 비슷하다. 인수를 추진하다가도 사전에 정한 적정 금액을 넘어서면 깨끗이 단념한다. 신 회장은 저렴한 호주산 와인 ‘옐로테일’을 즐겨 마신다. 와인의 엘리트 이미지 대신 생동감 넘치는 색과 캥거루를 등장시켜 선풍적 인기를 끈 와인이다. 롯데는 주력 업종 특성상 소비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데, 그룹 총수로서 신 회장의 향후 행보가 어떤 생동감을 보일지 관심이다.

글=최지영·이수기 기자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신동빈 회장은=글로벌 지향은 성장 배경과도 연관 있다. 1955년 일본에서 태어나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치고 81년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88년 2월까지 6년간 이 회사 영국 런던지점에서 일하며 글로벌 감각을 키웠다. 88년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하면서 롯데에 합류했다. 2004년부터 그룹 정책본부장을 맡아왔다. 그가 진두지휘한 후 2004년 23조3000억원이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61조원(잠정)으로 3배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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