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미호 선장 “실탄 든 총으로 위협 … 오발땐 그냥 죽을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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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근 선장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9일 풀려난 금미 305호가 10일 오전 공해상에서 유럽연합(EU) 함대 소속 핀란드군함과 만나 위험 수역에서 벗어났다. 정부 당국자는 “한국시간 오전 8시16분쯤 공해상에서 핀란드 소속 함정과 교신이 닿았다”며 “연료와 식량을 받은 후 이 함정의 호위를 받으며 안전지대인 케냐 몸바사항으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미 305호는 현재 시속 3노트 이하의 느린 속도로 이동하고 있어 1300여㎞ 떨어진 몸바사항에는 일러도 16일에야 도착할 예정이다.

 당초 김대근(55) 선장과 김용현(68) 기관장 등 한국인들이 말라리아에 걸렸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대부분 건강한 상태다. 그러나 선원들은 납치 이후 계속 구타와 고문에 시달렸다. 김 선장은 10일 한국 언론과의 위성전화 인터뷰를 통해 “생명에 위협을 느끼지 않았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선원에게 러닝셔츠 1장과 팬티 2장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신발·속옷, 심지어 화장실 휴지까지 싸그리 해적들이 빼앗아갔다”며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시달렸고 실탄이 장전된 총을 겨누며 위협해 오발이라도 나면 그냥 죽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금미 305호는 피랍 기간에 해적들의 추가 해적질에 모선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김 선장은 “해적 보트로는 먼바다까지 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금미호에 해적 보트 2척을 싣고 해적질에 동원됐다”고 증언했다.

 한편 정부는 케냐에서 선박대리점을 운영하며 소말리아 해적과 협상에 나섰다고 주장하는 김종규(58)씨 등을 만나 석방 경위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정부는 선원들 석방 사실이 처음 전해지자 ‘본능적인 의심’을 가졌다고 한다. 외교 소식통은 “이번처럼 해적이 일방적으로 석방한 경우는 아주 예외적”이라며 “의심을 했고, 속임수라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금미 305호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금미 305호는 2004년 감척 보상비로 4억5200만원을 받고 등록이 말소됐다. 원칙적으로 운항이 불가능한 셈이다. 또 다른 정부 당국자는 “조업을 할 수 없는 배로 욕심을 내 해적이 들끓는 위험 지역에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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