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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의견수렴 제대로 하고 법 만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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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수기
경제부문 기자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9일 대형 유통업체 최고경영자(CEO)들과 간담회를 했다. 그는 이날 “공정위와 여러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통업계 현장에서는 부당 반품·판촉비용 전가에 대한 납품업체의 불만이 있는 것 같다”며 “이를 개선하고자 공정위는 제도적인 장치를 올해 중 마련해 생산적인 유통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제도적인 장치란 ‘대규모 소매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다. 대형 유통업체의 일방적인 반품을 막기 위한 입증책임 전환과 백화점·대형마트의 판매수수료 공개가 골자다.

 하지만 참석했던 업체 대표들은 “입법 취지 자체가 유통업체를 나쁘게만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항변했다. 우선 입점수수료를 공개해 백화점·대형마트 간 경쟁을 유도한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백화점마다 입점수수료는 모두 다르다. 같은 백화점, 같은 층에 있는 상점이라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제품력이 있는 명품 브랜드는 입점수수료가 적은 반면, 제품력이 떨어지는 중소 브랜드는 더 높다. 둘 사이에 같은 수수료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중소업체 입장에서도 입점수수료를 공개하는 게 유리하지만은 않다. 영업비밀이던 입점수수료가 타 백화점에 노출돼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어서다. 백화점 입장에서는 실력이 검증된 유명 브랜드만 골라 입점시키는 상황도 올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 중소업체는 자칫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백화점 입점이 단순히 매출뿐 아니라 마케팅 측면에서도 활용되는 현실이다.

 다른 일이지만 1989년 세입자 보호를 위해 1년이던 전세 임대기간을 2년으로 늘렸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수많은 세입자 가장들이 셋집을 구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법 취지와 결과가 정반대로 나올 수도 있단 얘기다.

 또 대형마트는 와인 같은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판매 물품 대부분을 직접 사들인 뒤 되파는 구조여서 입점수수료라는 개념조차 희박하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경영자는 “사안이 민감해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법 제정과 관련한 의견수렴 절차 자체가 너무 적었다”고 불평했다. 대형 유통업체를 무조건 두둔하자는 게 아니다. 중소업체 보호를 위한 규제는 일정 수준 필요하다. 그럼에도 중소업체는 물론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폭넓은 정보와 의견을 구한 뒤 법률을 만드는 게 순서다. 

이수기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