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와 함께하는 NIE] 남을 위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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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고(故) 이수현씨의 10주기 추모식이 한·일 양국에서 열렸다. 고 이수현씨는 2001년 1월 26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한국인 유학생이다. 당시 일본 언론은 이씨에 대해 “얼굴도 모르는 외국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의인”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일본 정부까지 나서 국가와 공공에 공헌한 사람에게 훈장 대신 수여하는 목배를 이씨의 영정에 바쳤다.

지난달 26일 부산 내성고 앞에서 열린 고 이수현씨의 10주기 추모식에 이씨의 매제인 신기용씨가 헌화하고 있다. 이씨는 2001년 1월 26일 일본 유학 중에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의인이다. [중앙포토]


고 이수현씨처럼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타인에 대한 자비와 인간애를 실현하는 것을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 부른다. 비단 목숨을 바치는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며 이웃에 봉사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남을 위해 사용하는 등 헌신적인 태도도 살신성인에 속한다. 지난달 18일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통학버스를 몸으로 막아 학생들을 구하고 숨진 운전기사 고 김영인(53)씨나 지난해 3월 천안함 구조작업 중 순직해 온 국민의 마음을 울렸던 고 한주호 준위가 살신성인을 이룬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개인주의·이기주의가 만연한 현 세대에 살신성인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디지털 노마드(디지털 유목민·정보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21세기형 신인류)’라는 개념을 창안한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는 “미래 사회는 이타주의가 지배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나만 전화기를 갖고 있다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처럼 네트워크 경제에서 개인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된 미래 사회에서는 타인의 성공이 내게도 도움이 되고 타인의 불행이 내게도 재앙이 된다”고 강조했다. 신문 기사를 통해 ‘남을 위한 삶’의 가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살신성인 가치 되새겨봐야

천안함 구조작전 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에 대해 보도한 본지 4월 1일자 4

살신성인은 『논어』의 ‘위령공편’에 등장하는 말이다. 인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의미로, 공자는 인의를 충(忠)과 서(恕)라 규정했다. 충성과 용서는 공동체 삶의 덕목이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순종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 말이다. 살신성인은 개인의 삶보다 공동체의 가치를 우위에 둔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는 가치인 셈이다. 대표적인 예가 전쟁에서 참전용사의 희생이다.

청소년 가운데 공동체의 이익을 개인의 자유보다 우선해 생각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많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니, 내 일에도 상관 말라’는 식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에 젖은 탓이다. 개인주의 사상은 산업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이성 중심의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이 팽배해졌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산업화를 이룬 미국·유럽 등 서구 선진국이나 일본에 개인주의가 만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선진국에서부터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라’는 분위기가 조성돼 눈길을 끈다. 지난해 열풍을 일으킨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 정신을 강조한다. 샌델 교수는 그의 책에서 ‘공동선의 정치’를 강조하며 “애국주의, 자기 희생, 이웃에 대한 배려를 명예롭게 여기고 보상하라”고 역설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경제 침체의 원인을 지나친 개인주의에서 찾으며 집단을 중시하는 일본의 전통을 되살리자는 목소리가 높다. 한류의 인기를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향수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교토대 대학원 오구라 기조(인간환경연구과) 교수는 “한국 드라마에는 부모·자식 간의 사랑, 가족 관계 등이 살아 있다”며 “일본 사회 전반에 퍼진 개인주의의 폐해를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삶의 목표부터 재설정해야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로 변질되기 쉽다. 사익(私益)만을 꾀하고 사회 전체의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는 게 이기주의다. 개인의 부(富)와 명예를 우선시하는 현상이 심화되다 보면 개인과 공동체가 따로 떨어지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한다. 문제는 부나 명예는 누구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달라 보이는 상대적인 가치라 삶의 목표로 삼기 어렵다는 점이다. 개인주의자들은 자신보다 풍족한 이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불행함을 느낀다. 남보다 빨리, 더 많이 갖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에 내몰리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삶의 목표부터 재설정해야 한다. 심리학자들은 그 첫걸음은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살신성인의 실천과 직결된다.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형수 기자

해볼 만한 NIE 활동

올해부터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에 한주호 준위의 이야기가 실린다. 한 준위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귀감으로 삼으라는 뜻이다. 전쟁 등 잦은 외침과 환란의 역사를 거쳐온 만큼 기념할 만한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사례를 활용한 NIE 활동을 할 수 있다.

초등학생들은 신문에서 살신성인을 실천한 인물을 찾아 가상 인터뷰를 해볼 수 있다. 예비 6학년이라면 지난해 3월 신문을 뒤져 한주호 준위의 기사를 읽어보자. 교과서 내용을 미리 숙지해두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가상 인터뷰는 사건의 주인공을 실제로 만났다는 가정 하에 자신이 기자가 돼 질문을 던지고 답변도 상상해 적어보는 것이다. 한 준위에게 “구조 당시 기상 상황과 바다 물결 등이 어땠나?”를 묻고 신문 기사를 참조해 “사고 해역은 조류가 거세고 수심이 깊어, 후배 대원들에게만 맡길 수 없어 직접 나서게 됐다”는 답변을 적으면 된다. 고 이수현씨, 통학버스 기사 고 김영인씨,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도 가상 인터뷰 대상이 될 수 있다.

중학생이라면 현실적인 주제로 토의·토론을 해보는 게 가능하다. ‘혼자 길을 걷다가 낯선 사람이 도움을 요청할 때 어떻게 하겠는가’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삶이 가능한가’ 등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다. 살신성인을 실천하기 힘든 현실적인 이유들을 정리해보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해볼 수 있다.

고등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와 관련 지어 고민해보는 활동을 권할 만하다.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통해 살신성인의 가치관이 실현 가능한지 고민해보는 것이다. 의사라면 의료행위로, 교사라면 교육으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바가 뭔지 설정해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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