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닉슨 인 차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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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닉슨 인 차이나’에서 한국계 소프라노 캐슬린 김(가운데)이 노래하고 있다. 김씨는 마오쩌둥의 부인인 장칭 역으로 나왔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제공]

무대는 1972년. 에어포스 원이 수직 하강해 활주로에 내린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미 대통령 닉슨과 부인 팻 닉슨. 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자 청중이 웃으며 박수를 친다. 닉슨이 첫 아리아를 부른다. “뉴스는 참 미스터리한 거야” 자신의 뛰노는 심장박동을 표현하듯 “뉴스!”를 열두 번 반복하는 닉슨. 뉴스메이커로서의 만족감을 표현한다.

 저우언라이 (周恩來·주은래) 당시 총리가 닉슨 일행을 맞이한다. 자신의 말처럼 “세계를 뒤흔든 일주일”을 보낸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 중국 방문을 소재로 한 오페라 ‘닉슨 인 차이나(Nixon in China)’의 2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 초연 장면이다. 작곡가는 21세기 미국의 대표주자 존 애덤스(64)다.

 이 작품은 1987년 런던에서 초연됐고, 같은 해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에서 미국 초연됐다. 미국의 오페라 1번지라 할 수 있는 메트 공연은 처음이다. 완성 24년 만이다. 무엇보다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주석의 미국 방문 등 중국의 거센 기세와 맞물린 메트의 선택이 절묘했다.

 지휘는 작곡가가 직접 맡았다. 87년 초연을 연출했던 피터 셀라스, 같은 무대 닉슨을 맡았던 바리톤 제임스 마달레나가 다시 뭉쳤다. 연출은 흥미로웠다. 닉슨은 “중국을 싫어했었다”고 말하지만 중국 여인들은 통역하지 않도록 설정됐다. 연회 장면에서 축배를 들 때마다 객석에도 환하게 불이 켜졌다. 저우언라이는 물 흐르듯 연설을 하지만 닉슨은 떨리는 듯 더듬거렸다. 닉슨의 화법은 음이 반복되는 미니멀리즘 음악과 잘 어울렸다.

 2막은 팻 닉슨이 주인공이다. 베이징 명소 곳곳을 관광하며 시민들을 만난다. 이때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江靑·강청)이 늘 함께했다. 팻 닉슨은 가난하게 자랐던 자신의 이야기를 가난한 베이징 시민에게 들려준다. 이때 문화혁명의 주역이었던 장칭을 상징하는 중국 민속악기와 소비에트 발레가 혼합된 혁명 춤이 펼쳐진다. 장칭 역은 한국계 소프라노 캐서린 김이 하늘을 찌르는 듯 날카롭고 기교적인 음성으로 빼어나게 소화해냈다.

 1·2막은 역사적 다큐멘터리, 3막은 주인공들의 내면 드라마였다. 무대엔 네 개의 침대가 놓였다. 닉슨은 팻과, 마오쩌둥은 장칭과 침대에 눕는다. 헨리 키신저는 중국 여인들과 동침한다. 저우언라이는 “지난 일주일간 우리가 한 일은 잘한 것일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미국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거슈윈의 ‘포기와 베스’ 이후 최고의 미국 오페라”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현대 오페라 대신 고전적 작품을 주로 올렸던 메트에선 만날 수 없었다. 미·중 관계가 부드러운 무드에 들어선 시기, 이번 메트 초연에선 이러한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뉴욕=음악평론가 장일범 (KBS클래식FM ‘장일범의 가정음악’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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