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프랑스혁명 닮은 아랍 시민혁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이집트를 비롯해 아랍 국가에서 불고 있는 민주화 열풍은 외면상으로는 베를린 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권 몰락과 유사하다. 수십 년간 지속된 독재정권의 압정을 시민의 힘으로 떨쳐내고 민주화 시대를 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아랍의 현 시민혁명은 18세기 말 프랑스혁명에 더 가깝다. 1789년 시작된 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단순한 서민혁명이 아니었다. 신권왕정의 절대주의 체제에 반기를 들고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확립한 ‘사상혁명’이었다. 한 나라 내의 계급혁명이 아니라 사상혁명이었기에 유럽을 거쳐 전 인류의 가치관과 인식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아랍권의 시민혁명도 단순한 독재 타도 혁명이 아니다. 보다 큰 틀에서 보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는 우리의 유교전통을 포함해 여러 문명, 그리고 상당수 제3세계에 뿌리내린 인류의 가치관이다. 특히 아랍권에서는 이 인식체계가 강했다. 유목생활 때문이다. 정착문명과는 달리 생사를 결정하는 우물 혹은 오아시스를 보호하기 위해 무장을 해야 했다. 생존을 위한 전투는 남자들 몫이었다. 가장 강력한 가문, 혹은 집안의 남자 어른에게 모든 지도력과 권력이 주어졌다. 부족원은 아버지와 같은 부족장의 명령과 권위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이 전통의 바탕 위에 이슬람 종교가 시작되고, 종교적 해석이 모두 남자에 의해 이뤄지면서 남성 중심의 사회는 더욱 강화됐다.

 아랍권의 ‘죽어야 바뀌는 정권’ 특징은 이 인식체계에 기반을 둔다. 소위 왕정이라 불리는 걸프국가의 실질적인 통치체계는 가문의 정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드’ 가문, 아랍에미리트의 ‘나흐얀’ 가문, 카타르의 ‘사니’ 가문, 쿠웨이트의 ‘사바흐’ 가문의 수장이 절대 세습군주로 군림하고 있다. 공화정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군부 쿠데타 세력이 모두 죽을 때까지 집권한다. 선거는 있지만 이름뿐이다. 공화정인 시리아는 부자세습에 성공했고, 이집트·리비아·예멘도 권력 세습을 시도했었다.

 반면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시민혁명은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집트 고대 중앙집권 왕조를 시점으로 5000년 아랍 역사에서 시민혁명은 없었다. 민족국가가 등장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시민혁명이 성공한 예는 페르시아 국가인 이란뿐이다. 이도 성직자의 권위를 인정하는 신정체제 시아파 이슬람세력이 주도한 혁명이었다.

 아랍권의 시민혁명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 종말을 고하고 있다. ‘보호’라는 명분 아래 여성의 활동을 제약한 아랍권의 전통에 결정타를 날리고 있다. 오랫동안 아랍의 권력은 물리력의 주체인 남성이 차지해 왔다. 군대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전 자치정부 수반, 독재자 사담 후세인 등이 군복을 자주 입고 빈 권총집을 차고 다녔던 것도 물리력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걸프 왕정에서도 왕세자나 왕세제가 되는 정규 코스는 영국의 사관학교를 이수하고 경찰청장과 국방장관을 거치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들이 참여해 강압적인 힘이 아닌 목소리로 정권을 교체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5000년 아랍 중앙집권 정치사에서 최초의 사례다.

 이번 아랍의 민주화 열풍은 장기화할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1794년까지 5년 이상 지속됐듯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를 변화시키는 아랍의 시민혁명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다. 튀니지·이집트 등 공화정 국가에서 터진 이 사상혁명의 봇물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왕정국가들까지 확산될 것이다. 석유 수입, 플랜트 수출 등 아랍 및 이슬람권과 깊숙한 경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이번 사태를 주의 깊게 지켜보며 대책을 마련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