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시간은 중국 편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역시 ‘엄포’였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말이다. 지난 4일 미국 재무부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아니 ‘지정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게다. 중국의 역공, 자국 기업의 반발 등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또다시 덮어야 했다는 얘기다. ‘환율조작국 지정 엄포’는 그렇게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공화당 대선후보 시절이었던 2000년 5월 의회에 대해 “중국과 자유롭게 교역하라. 시간은 우리 편(Trade freely with China and time is on our side)”이라고 역설했다. 논리는 간단했다. 미국 덕택에 중국 경제가 성장한다면, 중국은 반드시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편입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중국의 경제발전은 민주화로 이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덕택에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그 후 10여 년의 세월, 시간은 과연 미국 편이었을까? 그랬다면 중국은 자유무역 질서를 존중하고, 민주 국가로 거듭났어야 했다. 현실은 반대라는 게 서방의 평가다. 미국 의회는 연례 행사처럼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규탄하고, 반체제 민주화 인사 류샤오보(劉曉波·류효파)는 노벨상 수상식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의 ‘시간 계산’은 틀렸다.

 경제 밑바닥에서도 감지된다. 지난해 말 미국 매사추세츠에 공장을 두고 있는 태양광업체인 에버 그린은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800여 명의 매사추세츠 직원들은 실직자로 내몰릴 위기다. 이 회사뿐만 아니다. LED조명기구 제작업체인 브리지룩스도 미국 공장을 줄이고 중국행을 검토하고 있다. 항공기 제작업체인 보잉은 중국 판매를 위해 부품의 중국 조달 비율을 높여야 할 처지다. 점점 많은 항공기 관련 일자리가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심지어 중국은 캘리포니아 고속철도를 깔아주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태양광·항공기 부품 등은 양질의 노동력을 고용하고 있는 분야다. 중국이 저임 노동시장뿐만 아니라 고급 노동력 분야도 넘보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뛰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가 당혹해할 수밖에 없다.

 부시 대통령 시기(2001. 1~2009. 1) 미국인들은 중국이 있어 행복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저가 제품 덕에 인플레 없는 성장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아니다. 미국인들이 흥청망청 돈을 쓰는 동안 중국은 알뜰하게 달러를 모았고, 그 달러로 미국 경제의 ‘목’을 누르고 있다.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약 9000억 달러의 미국 국채가 무기다. 미국은 중국이 혹 국채를 팔아 치우지 않을지 눈치를 봐야 할 처지다. 고급 일자리도 지켜야 한다. 시간이 지나도 개선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재임기간을 돌이키며 이렇게 탄식할지 모른다.

‘시간은 그들(중국)의 편이었다(Time is on their side)….’ 지난 10년 세계 경제 질서가 그 한마디에 녹아 있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