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은행 CEO 자리, 전리품 되면 안 된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04호 02면

새해 초부터 은행마다 최고경영자(CEO) 후임 인사 문제로 시끄럽다. 이른바 ‘빅4’ 은행이라는 국민·우리·신한·하나 중에서 국민을 제외한 세 곳이 진통을 겪고 있다. 이 은행들에선 임원은 임원대로, 직원은 직원대로 뒤숭숭해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신한금융지주에선 이달 21일로 예정된 회장 선출을 앞두고 라응찬 전 회장과 신상훈 전 사장이 후임자를 내세워 대리전을 펴는 양상이다. 지난해 신한 사태를 일으킨 당사자들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리 싸움에 끼어들었다는 얘기다.

정부의 대응도 오십 보 백 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1일 “신한금융은 당국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 불안해지면 우리가 들어가서 보겠다”고 말했다. 관치(官治) 의심을 살 만한 발언이다. 신한금융 스스로 정부가 개입할 빌미를 준 결과다. 김 위원장은 “은행은 정부의 인가장을 받아 장사하는 규제산업”이라며 관의 개입을 정당화했다.

지금 신한금융은 볼썽사나운 처지다. 전 경영진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인치(人治)와 정부가 개입하는 관치 사이에 낀 셈이다. 그러는 사이 고객의 이익은 뒷전으로 밀려 있다. 위장막이 벗겨진, 우리 금융권의 진짜 모습이다.

신한금융뿐 아니다. 우리금융지주의 이팔성 회장, 이종휘 행장 등 경영진도 다음 달 재선임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이달 말께 윤곽이 드러난다고 한다. 하나금융지주는 김승유 회장의 연임이 다음 달로 끝난다. 하나금융은 68세인 김 회장을 3연임시키되 CEO 연령을 70세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3연임에 대한 비판을 고려한 절충안일 것이다.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후보가 늘면서 경쟁이 과열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문제는 그 내용이다. ‘어느 은행 CEO에 정부에서, 정치권에서 누구누구를 밀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은행 CEO 인사를 바라보는 국민은 씁쓸하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별로 없어 보이는 곳이 은행이다. 외환위기 당시 세금으로 은행을 살린 기억이 생생해 더욱 그렇다. 은행은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경영진이 교체됐다. 하지만 정권 실세 또는 실세와 친분 있는 인사가 큰 은행을 맡고, 이들의 틈새를 비집고 경제관료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관행은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 역대 정권에서 이런 일이 반복돼 왔다.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장기적인 은행 발전방안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은행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고, CEO들이 자기 후계자를 키우지 않은 잘못이 크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역대 정권이 은행 CEO 자리를 공기업 사장처럼 논공행상을 위한 전리품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우린 보상차원에서 임명되는 CEO가 아니라 고객에게 필요한 CEO를 보고 싶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