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지배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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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호 29면

이집트는 인류문명 발상지다. 기제의 피라미드와 룩소르의 신전을 비롯한 거대 유적과 투탕카멘 왕의 황금마스크 등 화려한 유물을 낳았다. 기원전 31세기부터 기원전 525년까지 2500년 동안 26개의 파라오 왕조가 명멸했다. 동쪽에서 온 힉소스인, 서쪽에서 온 리비아인, 남쪽에서 온 누비아인이 세운 외국계 왕조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이집트인 왕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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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뒤로 20세기 중엽까지 줄곧 외세나 그 잔재의 지배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페르시아가 약 200년(기원전 525~기원전 332)간 점령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들을 몰아냈다. 뒤이어 그의 부하가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32~기원전 30)가 약 300년을 지배했다. 그리스·이집트 문화를 뒤섞은 그리스인의 왕조로,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여왕을 끝으로 망했다. 그 다음엔 로마의 식민 지배(기원전 30~기원 393)를 400년 이상 받으며 제국의 곡물 공급처로 전락했다.

392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이교 사원의 재산을 몰수하면서 고대 문화의 명맥마저 끊겼다. 이교 사원에서 사제들이 쫓겨나면서 고대 종교·문화·교육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사원은 폐가가 됐고, 고유 상형문자는 잊혀졌다. 19세기 프랑스 샹폴리옹이 해독법을 재발견하기까지 1500년 이상 묻혔다.

그 뒤 비잔틴 제국(395~646)의 지배를 거쳐 이슬람 세력인 아랍인에게 정복(639~1250)됐다. 당시 이집트인은 중대 결단을 했다. 대부분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고유의 말도 버리고 대신 코란을 기록한 언어인 아랍어를 쓰게 됐다. 그 결과 이집트는 아랍·이슬람 문명세계의 중심지로 올라섰다. 외래 문화는 물론 언어까지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되려 그 세계의 주인공으로 등극한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지배는 여전했다. 군인집단인 맘루크(1250~1517)와 오스만 튀르크(1517~1805)의 지배를 잇따라 받았다. 19세기에 이르러 오스만의 이집트 총독이 무함마드 알리 왕조(1805~1882)를 세웠다. 발칸반도 출신의 알바니아계 왕조다. 1882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영국과 프랑스 세력이 몰려왔다. 1914년 영국 보호령이 됐지만, 22년부터 입헌군주국으로 무함마드 알리의 후손이 통치했다. 하지만 36년 영국·이집트 조약에 의해 영국군이 주둔했다. 이들은 52년 쿠데타로 왕정이 무너진 뒤에도 계속 머물다 56년에야 떠났다. 52년 군부쿠데타로 이듬해 무함마드 나기브가 대통령에 올랐다. 그는 따지고 보면 이집트 핏줄로는 거의 2500년 만에 이 나라의 통치자가 됐다. 나기브는 곧 밀려났지만 그 후임인 가말압델 나세르와 안와르 사다트는 평생 권력을 놓지 않았다. 뒤를 이은 무바라크도 30년을 군림하다 민중혁명 상황을 맞고 있다. 이집트는 앞으로 민주주의 시험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혼란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민주주의가 정착하도록 이집트를 도와야 할 역사적 책무가 있다. 다음 차례는 북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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