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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만원으로 시작한 여행사, 2600억 회사 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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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애 대표와 후배들이 이화여대 ECC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남궁예슬 학생, 송경애 대표, 오소민 학생.

포브스코리아눈이 소복이 쌓인 1월 14일 세 여자가 서울 이화여대에 모였다. 30년 전 가죽바지를 입고 교정을 활보했던 송경애 BT&I 대표와 CEO를 꿈꾸는 두 명의 후배 오소민(영문과 06), 남궁예슬(경제과 07)이다.
10년 후쯤에는 멋진 CEO가 되고 싶다는 두 학생은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다. 그동안 학점 관리와 자격증, 영어점수 획득 등 스펙 쌓기에 힘썼다. 하지만 장래 희망인 CEO가 진짜 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어떻게 하면 CEO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후배들을 위해 송경애 BT&I 대표가 나섰다.

송경애 BT&I 대표 모교에서 후배를 만나다

세 사람은 이화여대 중심에 위치한 건물 ECC(Ewha Complex Campus)에서 대화를 나눴다. 도착 시간에 맞춰 강의실에 들어오는 송 대표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170㎝ 넘는 키에 긴 생머리를 질끈 묶은 그는 새빨간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여행업계의 패셔니스타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성큼성큼 걸어와 후배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ECC는 파리 국립도서관을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했다. 서점, 커피전문점, 피트니스센터, 영화관 등 편의시설을 갖췄다. 강의실과 도서관도 있다. 최근 중국 여성 사이에 ‘이화여대 앞에서 사진 찍으면 시집을 잘 간다’는 소문이 퍼져 추운 날씨에도 관광객이 꽤 많았다.

송경애 오늘 후배들 만난다고 해서 젊게 보이려고 청바지 입고 왔어요. 학교가 많이 달라졌네요. 이 건물(ECC)도 처음 와 봐요.
오소민 3년 전에 생겼어요. 예전에는 이 건물 자리가 운동장이었다는데 이렇게 바뀌었어요. 선배님은 대학 시절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해요.

송경애 대학 다닐 때는 무척 바빴던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를 항상 했어요. 주로 번역 일을 했고, 외국인 관광객 가이드도 했어요. 생활비, 학비 다 벌어서 썼어요. 돈 벌기 쉽지 않다는 걸 느꼈죠. 중·고교는 미국에서 마쳤어요.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 한국에 놀러 왔는데, 대학 다니는 친척들이 부럽더라고요. 미국보다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결국 부모님을 졸라 한국 대학에 진학했죠.
남궁예슬 요즘에는 학교 다니면서 일하기가 쉽지 않아요. 대부분 학비나 용돈을 부모님이 대주죠.
송경애 맞아요. 그 시절에도 그랬어요. 졸업 후 직장 찾는 친구들도 별로 없었고요. 대학원 다니다 시집가는 것을 정통 코스로 생각하는 친구가 많았죠. 제가 경영학과 80학번인데, 지금까지 사회활동 하는 동기는 고작 두세 명이에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사고 싶은 게 있는데, 어머니가 안 사주시면 벌어서 샀어요. 처음에 49달러짜리 귀고리가 너무 갖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죠. 70년대 미국에서도 고등학생에게 큰돈이었거든요. 피자집에서 페페로니도 썰고, 샌드위치 가게에서 음식도 만들어 결국 샀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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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C 강의실에서 대화하는 모습.

남궁예슬 학생은 자신도 아르바이트를 해 갖고 싶은 옷을 산 적이 있다고 맞장구 쳤다. 여대생에게는 종종 있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는 아르바이트를 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 점이 송 대표와 다르다.

송경애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 경험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돈을 받아서 쓰기만 하면 소중함을 알 수 없어요. 힘들게 돈을 벌어본 사람은 함부로 못 써요.
오소민 졸업 후 27세에 창업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궁금해요.
송경애 사업 시작까지 많은 일이 있었어요. 일단 졸업 후 미국에 들어가 대학원을 다녔어요. 길을 지나가다 고등학교 때 귀고리 사려고 아르바이트를 했던 샌드위치 가게를 우연히 발견했어요. 재미있는 게 그때 저를 마구 부려먹던 흑인 매니저 두 명이 아직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더라고요. 가게에 ‘for sale’이라고 붙어 있기에 갖고 있던 5만 달러로 그 가게를 샀어요. 내게 양파, 토마토를 자르라고 윽박지르고, 뒤에서 담배 피우며 놀던 그 사람들의 고용주가 돼 월급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모를 갚아주고 싶었거든요. 가게 인수 후 한국인 매니저를 고용했고, 매출이 네 배로 뛰었어요. 되팔 때는 30만 달러가량 받았죠.
오소민 대단하세요. 그런데 왜 미국에서 계속 가게를 운영하지 않았나요?
송경애 집에서 난리가 났어요. 대학원 다니다가 장사를 하니까 어이가 없었겠죠. 자꾸 일을 벌이고 다닌다고 부모님이 싫어했어요. 그때 집에서 결혼시키려는 남자가 있었어요. 10월로 결혼이 예정돼 있었는데, 한 달 전에 한국으로 도망 왔어요. 그 남자는 제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팬티도 명품을 입을 것 같은 남자’였거든요. 옷가방 하나 달랑 들고 1만 달러 챙겨서 한국에 왔죠.

두 학생은 송 대표의 ‘강심장’에 놀라워했다. 요즘 젊은이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기백이었기 때문이다.

송경애 한국에 와 한동안 걱정이 많았어요. 처음엔 신라호텔에서 VIP 코디네이터로 일했어요. 한국에 온 VIP의 통역과 비행기 티케팅 하는 업무를 담당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업 아이템을 발견했어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여행사를 차려야겠다고.

남궁예슬 여행사를 차릴 때 돈은 얼마나 갖고 시작했나요?
송경애 250만원 갖고 직원 세 명과 출발했어요. 당시 회사명이 ‘ITS(Itaewon Travel Service)’였죠. 외국인 하면 이태원이 떠올라 그렇게 지었어요. 회사는 이태원에 없었고요. 처음에 ‘이태원 미스 송’이라고 불렸는데, 내가 전화를 걸면 비서가 사장한테 전화를 바꿔주지 않았어요. 이름 때문에 이미지가 좀 이상해서(웃음). 그래서 ‘Itaewon’을 ‘International’로 바꿨죠.
오소민 학생은 처음에 기업 고객을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어떻게 고객을 확보해 나갔는지 궁금해했다. 최근 그는 경영학 수업에서 CRM(고객관리기법)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 시절에도 고객을 타깃화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가능했는지 물었다.
송경애 초기에는 기업은 생각도 못했고, 외국인 한 명, 한 명이 고객이었죠. 그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어요. 외국인학교 휴게실에 몰래 들어가 명함을 건네고, 개인용 우체통에 DM도 직접 꽂아놨죠. 경비 아저씨한테 걸려 자주 혼났어요.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무조건 따라가 말을 건네기도 했고요. 그렇게 해 6개월 만에 외국인학교 선생님에게 티켓 한 장을 팔았어요. 3년이 지나면서 수익도 생기고, 기업 고객도 생겼죠. 우리 회사 최초 기업 고객이 케미컬 뱅크였어요.
오소민 고객 확보를 위한 선배님만의 비법이 궁금해요. 여성이라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나요?

송경애 거래했던 외국인 고객이 다른 분에게 저를 소개시켜주고, 입소문이 나 기업의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죠. 지금도 50%는 입소문 고객입니다. 저는 원래 광고도 안 했어요. 작년 처음으로 시작했죠. 다만 사업 초기부터 VIP들의 특징을 꼼꼼히 기억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했어요. 비행기 좌석을 고를 때 2층 왼쪽 두 번째 창가를 선호하는 분, 낮은 베개를 선호하는 분,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선호하는 분 등 모든 특징을 기록해놔요. 이게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겠죠. 이런 게 강점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최근 여성의 사회 진출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CEO나 기업 임원을 보면 여전히 남성이 월등히 많다. 남궁예슬 학생은 한국 사회의 유리 천장이 깨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송 대표는 스스로 헤쳐나갔다고 했다.

송경애 글쎄, 여성이라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저를 그냥 CEO로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CEO 앞에 ‘여성’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를 사양해요.

젊었을 때는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사장이라고 하면 깔보는 남자가 있긴 했어요. 이제는 그런 거 없죠. 처음에 한국의 접대 문화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어요. 저는 골프도 안 치고, 접대도 안 해요. 이제껏 저녁 때 저랑 술 마신 거래처 직원은 한 명도 없어요. 골프 안 친다고 거래처에서 잘린 적도 있죠. 낮에 밥 먹고 차 마시면서도 사업 얘기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저를 보세요. 가능하다니까요.

오소민 그런 회사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직원과의 관계는 어떤지 궁금해요. 회사 직원들과도 술을 잘 안 드시는지….
송경애 저는 ‘어떻게 하면 직원들과 좀 더 재미있게 놀까’ 이벤트를 구상하는 것을 고민해요. 영화 이벤트, 소원 들어주기 등. 폭탄주 돌리는 회식 같은 건 절대 안 해요.
직원의 70%가 여자예요. 결혼했거나, 쌍둥이 아이까지 있는 분도 있고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자유롭게 제공해 결혼하고도 회사 다니는 분이 많아요. 임원 상당수가 여자고요.

송 대표는 어머니와 CEO 두 가지 역할을 다 잘했을까. 오소민 학생은 그게 궁금했다.

송경애 일하는 엄마를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초등학교 시절에는 시간을 같이 못 보낸다고 불만이 있었는데, 이제 아이들이 ‘나도 일하는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말해요. 자주 아이들을 보지 못하니까 최소한의 내 모습만 봐서 그런 것 같아요. 저의 좋은 모습만 기억하는 거 같아요(웃음). 남편도 착하고 배려심이 많죠.
남궁예슬 결혼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요. 연애결혼 하셨나요?
송경애 대학 시절 미국에 있는 친구가 소개시켜줬어요. 그때는 인터넷도 없었으니깐. 사진을 보내왔는데, 너무 잘생겼더라고요. 몇 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다가 한국에서 만났죠. 그런데 제가 제일 싫어하는 숏다리였어요. 사진에는 상반신밖에 안 나와 몰랐죠. 하지만 너무 착한 남자였고, 열 번 만나고 결혼했어요.

어제는 제가 회사에 안 좋은 일이 생겨 저녁 8시30분까지 퇴근을 못 하고 있었어요. 남편이 전화를 했기에 ‘회의 중입니다’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끊었는데, 기분이 안 좋은 걸 감지한 거죠. 10시 넘어 집에 들어가 현관문을 열었는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불러주더군요. 힘들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어요.

오소민 가정생활도 무척 행복하신 것 같아요. CEO를 지망하는 여대생에게 들려줄 조언이 있을까요?
송경애 먼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과 못하는 일을 구분하는 게 중요해요. 장점을 차별화시켜야 하고요. ‘세일즈에 적합한가?’ ‘기획력이 있나?’ 를 고민해 하고 싶은 일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쌓아야 해요. 못하는 것은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해요. 누군가의 멋진 성공 스토리를 따라 할 게 아니라 자신만의 커리어를 만들어가야죠. 저는 직원 뽑을 때도 ‘아프리카에서 3년 살다 온 사람’ ‘설악산에 50번 다녀온 사람’처럼 차별화된 경험을 해본 사람들을 선호해요.
남궁예슬 BT&I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송경애 2007년 온라인 전문여행사 투어익스프레스를 인수하면서 종합여행그룹으로 변신하고자 노력 중이죠. 온라인 수요에 발 빠르게 대처한 것은 잘한 것 같아요. 이 부문에서 매출도 상당하고요. 작년 매출이 2600억원 정도였는데, 올해는 30% 이상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기업회의, 포상관광, 컨벤션 전시 관광 등 마이스(MICE) 부문 매출이 큰 편이죠. 앞으로 외국 관광객을 위한 VIP 서비스에도 치중할 계획입니다.

남궁예슬 기부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셨죠?
송경애 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중 여성이 한 명도 없다기에 가입하기로 했어요. 작년에 50살이 되기도 했고, 결혼 20주년이 된 특별한 날이기도 하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외교관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기부 파티에 많이 다녔어요. 원래 크리스천이기도 해서 기부문화가 자연스럽게 몸에 밴 거죠. 가족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은 기부의 날로 정해 숫자에 맞는 기부를 해요. 첫째 아들 생일이었던 2010년 6월 23일에는 2010만623원을, 결혼기념일이었던 2010년 11월 17일에는 2010만1117원을….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기념일이고, 축복 받은 날이니까요.

기획·정리 유현정 기자 hjy26@joongang.co.kr ·사진 전민규 기자

■ 송경애 대표는…

미국에서 중·고교를 마친 후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신라호텔 VIP코디네이터를 거쳐 1987년 BT&I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출장과 회의, 콘퍼런스 등 마이스(MICE)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최대 기업 여행사다. 코스닥에 상장돼 있으며 2010년 매출은 2600억원가량이다. 송 대표의 좌우명은 ‘원피스 대신 4P를 입자’다. ‘Passion’ ‘Positive’ ‘Pride’ ‘Patience’를 마음속에 간직하며 산다.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최초 여성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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