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살 빼고 기술 더한 자린고비차,연료비 1만원 남짓에 서울서 대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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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잠시도 안심할 수 없어요. 모든 가능성에 문을 열어둬야 하니까요.” 2년 전 독일을 방문했을 때 폴크스바겐 연구원 울리히 아헨바흐가 귀띔해준 친환경차 개발의 어려움이었다. 그건 폴크스바겐뿐 아니라 전 세계 자동차 업체의 고민이기도 하다. 완전 무공해 차가 등장하기 전까진 어떤 방식이 주류가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연비를 높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친환경 동력원을 더해 엔진의 역할을 최소화하면 된다. 더하기의 개념이다. 아니면 엔진은 유지하되 각종 저항을 꼼꼼히 제거하면 된다. 이건 빼기다. 엔진을 쓰는 이상 가장 바람직한 해법은 두 가지 수단의 조화에서 찾을 수 있다. 아헨바흐가 밤낮 없이 찾는 게 바로 그 황금비율이다.

그의 땀이 녹아든 결실을 국내에서 만났다. 폴크스바겐의 ‘골프 1.6 TDI 블루모션’이다. 겉모습만 봐선 일반 골프와 구분이 어렵다. 도요타 프리우스처럼 꽁무니를 싹둑 쳐내거나, 기아 포르테 하이브리드처럼 희멀건 테일램프를 씌우지 않았다. 일반 골프와의 차이라고 해봤자 조금 더 얇은 타이어와 손가락 굵기만 한 블루모션 엠블럼 정도다. 이번에 시승한 골프 1.6 TDI는 블루모션 브랜드의 최신작이다. 효율적인 연료분사 시스템과 7단 듀얼 클러치(DSG) 변속기, 스타트-스톱 시스템(정차 시 자동으로 시동을 끄는 장치), 구름저항을 낮춘 에너지 세이버 타이어를 갖췄다. 여기까진 이른바 더하기다.

그 다음엔 차의 안팎을 훑어가면서 빼기에 나섰다. 안개등 주위와 라디에이터 그릴의 일부를 막았다. 차체 밑바닥엔 커버를 꽁꽁 덧씌웠다. 바퀴를 감싼 철판 안쪽까지 세심하게 다듬었다.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집요한 노력에 힘입어 골프 1.6 TDI 블루모션은 공인연비 21.9㎞/L, 이산화탄소 122g/㎞를 달성했다. 블루모션 기술이 녹아들었지만, 골프 고유의 성격엔 변함이 없었다. 단단한 차체, 치밀한 조립품질, 든든한 고속 안정성은 여느 골프와 고스란히 겹쳤다. 단지 연료를 덜 먹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골프가 비로소 제 짝 엔진을 만난 느낌이었다. 1.6L 디젤 엔진은 저회전에서 강력한 힘을 내기 때문에 가속이 잦고, 오르막이 많은 도심과 궁합이 잘 맞았다. 골프 1.6 TDI 블루모션의 가격은 직물시트를 단 300대 한정판이 3090만원이다. 골프 2.0 TDI보다 200만~300만원 저렴하다. 이달 초 출시 닷새 만에 300대가 모두 팔렸다. 폴크스바겐코리아는 3월부터 16인치 알로이 휠과 가죽 패키지 옵션이 추가로 장착된 모델을 3190만원에 판매할 예정이다.

골프 블루모션의 감동이 채 가시기 전, 이번엔 BMW의 친환경 차를 시승했다. ‘320d 이피션트 다이내믹스’였다. BMW가 연료를 아끼기 위한 자린고비 기술을 아낌없이 녹여 넣은 모델이다. 국내 소비자의 선호도가 낮은 수동변속기를 단 점을 감안해 BMW코리아는 320d 이피션트 다이내믹스를 50대 한정판으로 들여왔다. 다음 달에는 이 기술을 채용한 신형 X3도 내놓는다.

골프처럼 이 차도 외모는 일반 320d와 별반 차이가 없다. 진짜 기술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다. 가령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펌프나 파워 스티어링 모두 엔진이 아닌, 모터의 힘으로 해결한다. 브레이크를 걸 때 생기는 에너지 등을 알뜰살뜰 모아 모터를 돌린다. 따라서 이 차의 엔진은 바퀴만 열심히 굴리면 된다. 그 결과 2.0L 디젤 엔진으로 22.2㎞/L의 연비를 낸다. 아울러 친환경 차지만 운전의 즐거움을 외면하지 않았다. 6단 수동기어로 디젤 엔진을 절절 끓여가면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토크를 뒷바퀴로 퍼 나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런 친환경 차를 탄다 해도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생각 없이 밟고 다니면 ‘말짱 도루묵’이다. 마찰저항과 무게를 줄이는 건 업체의 몫이지만, 운전습관을 바꾸는 건 소비자의 숙제다. 폴크스바겐코리아는 골프 블루모션을 출시하면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연료절약법을 소개했다. 우선 부드러운 주행이다. 전방 상황을 파악해 여유 있게 몰면 제동 횟수를 줄일 수 있다. 자연스레 가속도 뜸해진다. 변속은 빠를수록 좋다. 차체 길이만큼 움직이면 바로 2단을 넣고, 꼭 순서대로 변속할 필요도 없다. 내리막이나 평지에서 관성을 이용해 달릴 경우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연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 오히려 기어를 N(중립)에 놓으면 공회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연료를 마신다. 또, 멈춰 섰을 때 엔진이 3분 동안 쓰는 연료는 시속 50㎞로 1㎞를 갈 때 필요한 연료와 같다. 따라서 신호대기 등 20초 이상 정차할 땐 시동을 끌 것을 권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다. 폴크스바겐과 BMW의 친환경 차를 잇따라 타보고 새삼 그 의미를 곱씹게 됐다.

김기범 객원기자 kb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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