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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귀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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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주역(周易)의 가르침 중 하나가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이 있다’는 거다. 바로 끌림 현상이요, 귀소(歸巢) 본능이다. 이런 자연적 귀소성을 인간에게 적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귀향이다.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원초적 본능이란 얘기다. 유교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명절 때의 ‘민족 대이동’을 방불케 하는 귀향 행렬이 이를 일깨우는 증거다.

 우리의 설이 중국에선 춘절(春節)이다. 흩어져 있던 가족이 모이는 때다. 음력 새해 첫날이란 상징성뿐 아니라 고향에 가서 혈연을 찾는다는 의미가 크다. 그래서 올 춘절엔 중국 인구의 2배가 넘는 연인원 28억여 명이 각지로 이동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귀향하는 농민공(農民工)들로 중국 대륙 도처가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가 돼 몸살을 앓을 터다. 열차·버스표를 못 구한 사람들은 길게는 1500㎞ 이상 떨어진 고향을 오토바이를 타고 5~6일씩 걸려서라도 간다고 한다. 모두 떠나니 춘절 전후에는 도시의 음식점이나 공장에서 새로운 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다. 고향의 힘이요, 귀향 본능이 빚은 현상이다.

 베트남에서도 최대 음력 명절은 떼뜨(설)다. 타향에 나가 사는 수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는 것도 이때다. 인구 네 명 중 한 명꼴이 넘는 2000만여 명이 대이동을 한다고 한다. 외국에 체류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모국 방문을 많이 하는 때도 설 명절 기간이다. 귀향길 선물은 꼭 챙긴다. 평소 자린고비란 소릴 듣던 사람도 설 귀향 선물엔 돈을 안 아낀단다. 10명 중 6명이 월 소득의 70%를 선물 비용으로 쓴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 귀향과 피붙이에 대한 정(情)이 낳은 소산물(所産物)이다.

 한국의 설 풍경이라고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올해는 그렇지 못할 모양이다. 구제역 여파 탓으로 귀향이 여의치 않아서다. 정부와 지자체는 연일 담화문·서한문을 동원해 설 연휴 귀향 자제를 호소하느라 난리다. 향우회가 나서 출향민들에게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편지를 내기도 한다. 전북도애향운동본부가 출향민 350만 명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애달플 정도다. 오죽하면 “고향이 걱정되고, 고향을 사랑한다면 고향을 더욱더 멀리해 주는 것만이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 됐을까.

 퇴계(退溪)와 성균관 동기였던 하서(河西) 김인후가 설에 귀향하지 못하고 성균관에 홀로 남았을 때 심정은 이랬다. “쓸쓸하기가 들판의 스님과 꼭 같다네. 고향집 동산을 꿈속에 그릴밖에.” 하루빨리 구제역이 퇴치돼 설 귀향 못한 이들의 안타까움을 달래주면 좋으련만.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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