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흔드는 건 신문, 어산지는 그 뉴스 생리를 이용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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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도청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통화할 수 있는가? 상당한 분량의 비밀문건이 있는데….”

 미 뉴욕타임스(NYT)의 빌 켈러(Bill Keller·사진) 편집인은 28일 미국의 국방·외교 문서를 해킹·폭로해 전 세계를 뒤흔든 위키리크스 문건의 기사화 과정을 상세히 밝혔다. ‘위키리크스:인사이드 스토리(지면사진)’라는 제목으로 직접 쓴 3개 면에 걸친 장문의 기사를 통해서다. 편집인이 기사를 직접 쓰는 것은 언론계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는 BBC나 CNN 같은 방송을 선택하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곧바로 정보를 폭로하지도 않았다. 신문을 선택했다. 그에게 초대받은 언론은 영국의 가디언, 미국의 뉴욕타임스, 독일의 슈피겔이었다. 3개월 후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 프랑스의 르몽드, 스페인의 엘파이스가 참여했다. 각 국의 대표 신문이다. 세상을 뒤흔드는 뉴스의 힘은 신문에서 나온다는 것을 어산지는 잘 알고 있었다.

지면 사진

 켈러는 위키리크스 기사가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어느날 영국 가디언의 편집인 앨론 러스브리저가 켈러에게 전화를 했다. “안전하게 통화할 수 있는냐고 물은 후 그는 ‘위키리크스’에서 상당한 분량의 미국 기밀정보 문서를 입수했다”고 말했다. 함께 보도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는 군사전문기자인 에릭 슈미트를 런던에 보내 정보가 사실인지, 공익에 부합하는지 판단하게 했다. 위키리크스 문건을 보도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법률상의 문제 등도 검토했다. 군사·법률·데이터 분석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별팀을 꾸렸다. 그러면서 가디언·뉴욕타임스·슈피겔 3개지가 보도 날짜를 맞추는 등 공조에도 나섰다.

 그는 “보도과정에서 국가기밀 보도와 언론자유에 대해서도 상당한 고민을 했다”며 “언론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위키리크스가 제공한 자료를 그대로 보도하지 않고 자체적인 검증을 통해 보도 내용도 선별했다고 강조했다. 정보에 대한 팩트 체크뿐 아니라 명예훼손이나 인권 침해가 우려되는 공무원·외국의 정보원·외교관 보호에도 힘썼다고 말했다.

 켈러는 “신문은 독립된 언론기관으로 정보를 체크하고 확인해 써야 한다”며 “권력으로부터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의 제작 원칙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어산지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어산지를 처음 만난 슈미츠 기자는 어산지가 ‘흡사 노숙자 같았고, 더러운 흰색 셔츠에 닳아빠진 운동화, 며칠이나 목욕하지 않은 사람처럼 냄새를 풍겼다’고 보고했다. 어산지는 ‘엠바고(일정시점까지의 보도 유예)’를 이용할 만큼 미디어 생리에 정통했고 엠바고를 깨는 신문사에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정보원이 순수한 마음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는 없다”며 “어산지도 예외는 아니다”고 말했다. 켈러는 “어산지는 정보원이지 파트너나 협력자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정보원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오는 31일 위키리크스를 다룬 전자책 ‘공개된 비밀들, 전쟁과 미국 외교’를 발간한다.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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