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이상훈·세돌 형제의 어린 시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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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상훈(36·사진 왼쪽) 7단과 이세돌(28·오른쪽) 9단은 친형제다.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름다운 다도해의 일원인 비금도(飛禽島)는 새가 날아오르는 형상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1946년 국내 최초의 천일염전이 이곳에서 문을 열었고 소금 장사가 잘돼 한때는 ‘돈이 날아다니는 섬’으로 불리기도 했다지만 비금도는 여전히 목포에서 뱃길로 1시간 30분을 가야 하는 먼 곳이다. 전직 교사이자 열렬한 바둑팬인 아버지로부터 3남2녀 모두 바둑을 배웠다.

 이화여대 재학 시절 아마 강자로 이름을 알렸던 이세나씨가 쓴 동생 세돌의 어린 시절 얘기는 따스한 회상으로 가득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피자’가 열리는 나무가 우리 집에 있다고 우겨 반 아이들을 집에 끌고 온 얘기(집에 있는 비파나무 열매를 말로만 들어본 피자라고 생각했던 것), 막걸리 홀짝이던 맛에 취해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이라면 도맡았던 얘기, 여덟 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서울의 어린이 대회에 출전했는데 빚을 내 경비를 충당한 탓에 반드시 우승해서 상금(장학금)을 타야 했고 그래서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결연한 각오로 상경했던 얘기….

 형 이상훈은 한때 신인왕전과 신예10걸전에서 잇따라 우승한 유망주였으나 애석하게도 전성기에 접어든 동갑내기 이창호의 위력에 눌려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지난 일요일(23일), KB한국바둑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형 이상훈이 감독을 맡고 동생 이세돌 9단이 주장을 맡은 신안태평천일염 팀이 한게임을 3대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세돌은 무려 16승2패의 압도적인 전적으로 팀을 이끌었고 형은 명감독이 됐다. 지금 비금도 최고의 자랑은 이세돌 9단이다. 그곳에 가면 폐교에 만들어진 이세돌 기념관이 있다.

  고향이 있다는 건 좋은 것이다. 1004개의 섬으로 된 신안군은 전국 지자체 중 제일 가난하고 물산이라고는 ‘슬로 시티’ 증도와 천일염, 흑산도 홍어, 비금도의 시금치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나 많은 서울 사람이 그런 고향을 부러워할 것이다. 결승전이 열리는 날, 신안군에선 군수와 군민들, 그리고 어린이 합창단까지 응원단이 천리 길을 멀다 않고 올라와 모처럼 신나는 축제를 즐겼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이세돌 9단의 어정쩡한 모습이었다. 수줍은 이세돌은 신안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고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다. .

 이세돌은 중국리그에 가면 한국리그의 5배까지 받는다. 2년 전 신안팀 창설 때 이세돌은 한국리그 불참을 선언했고 그 사건은 곧 휴직사태로까지 비화했다. 그 상처 때문일까. 하지만 이건 한국기원과의 문제고 한국 바둑계의 구조적 문제다. 힘 없는 고향 사람들은 공은 있을지언정 아무 죄(?)가 없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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