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광재 강원지사의 사법적 도전과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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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광재 강원도지사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는 우리 사회가 불법 정치자금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실을 재확인한 판결이다. 어제 대법원은 무죄라는 이 지사의 주장을 물리치고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등에게서 검은돈을 받은 혐의를 인정했다. 1, 2심 모두 징역형(집행유예)과 거액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면 굳이 법률심인 대법원까지 갈 것 없이 조용히 물러나는 게 도리였다. 하지만 이 지사는 사법적 도전을 계속 강행했고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추락하는 결과를 선택했다.

 대법원 유죄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이 지사는 부적절한 처신의 대가가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2009년 3월 당시 민주당 의원이던 이 지사는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되자 “정치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도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뒤 6·2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에 당선됐다. 취임과 동시에 직무가 정지되는 초유(初有)의 사태가 벌어지고, 헌법소원을 거쳐 불안하게 도지사직을 맡아왔다. 여론을 등에 업고 도백(道伯)에 당선됐다고 죄(罪)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세상에 기적은 없다”는 한 판사의 말은 아주 적절한 지적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기 마련이다. 야당에선 “정치적 판결이며, 대법원 역사에 오점으로 남았다”고 비판했는데 불법에 어떤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지 되묻고 싶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박시환 대법관이 재판의 주심을 맡았다는 점에서 그런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

 어제 대법원은 한나라당 박진 의원, 민주당 서갑원 의원,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에 대해서도 선고했다. 이로써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2009년 기소한 21명 가운데 19명(17명 유죄, 2명 무죄)은 확정 판결이 난 상태다. 박연차 전 회장의 사건은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지만 일부 혐의 적용이 잘못됐다는 뜻이지 유죄라는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다. 2년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연차 게이트’는 사법 절차가 사실상 마무리된 것이다.

 박연차 게이트는 도덕과 청렴을 강조했던 노무현 정권 실세들의 추악한 부패(腐敗) 실태를 드러낸 사건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롯해 부패를 감시해야 할 고위 공직자와 노 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대거 연루됐다. 특히 이광재 지사와 서갑원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이른바 ‘386 실험’의 최전방에 섰던 인물들이다. 이 지사와 서 의원의 유죄는 이 실험이 실패로 끝났음을 상징한다. 또한 박연차 게이트에는 ‘죽은 권력에 대한 표적수사’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대법원 판결을 통해 검찰의 수사가 대부분 정당했음을 확인시켜 줬다.

 이제 강원도는 4월 27일 보궐선거 때까지 도정(道政)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 올해 7월 개최지가 결정되는 2018 겨울올림픽 평창 유치전이 차질을 빚어선 안 된다. 당장 다음 달로 예정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실사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동안 쌓였던 갈등을 털고 도민들이 힘을 모으는 일은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