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이영일]미·중 정상회담이 한반도에 주는 국제정치적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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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부터 3박 4일 간 미국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조성된 새로운 국제관계의 현실을 놓고 지구최강국(最强國)들 간의 입장조율이라는 견지에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정상회담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에 임하는 미국의 입장은 다분히 수세적이었다. 그간 중국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미국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앙양된 중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국제관계의 현실에서 자기 몫으로 챙기는데 정상회담의 중점을 둔 반면 미국은 지금까지 누려오던 세계정치에서의 지위와 권한을 국제정치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중국과의 관계에서 재분배(再分配)해야 할 도전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가히 세계질서의 새로운 변곡점을 마련하는 정상회담이었다. 미중양국은 다행히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41개항의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이 협력해서 풀어야할 세계정치의 주요과제를 정리했다. 이러한 과제가운데는 양자 간에 의견이 합치된 부분도 있지만 양자 간의 입장 차이를 미래에 조율해야 할 과제로 유보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양자가 대화와 협력을 통해 세계평화와 안정, 발전에 공헌하자는 쪽으로 회담을 마무리 했다.

이 회담에서 우리가 관심을 갖는 문제는 공동성명 19항이다. 미중공동성명은 그 19항에서 한반도에 관한 미중양국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문면 상으로는 원칙적 입장의 표현이지만 전문가적 견지에서 보면 우리에게 몇 가지 심각한 숙제를 던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성명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첫째 문제는 미중양국이 비핵화의 방법으로 2005년도에 6자회담에서 합의한 바 있는 이른바 9.19성명을 세 차례에 걸쳐 언급하고 있는 점이다. 9.19성명은 한마디로 북 핵을 미국과 북한간의 수교를 포함한 적정한 수준의 보상을 주고 북한 핵을 포기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은 NPT조약을 위배한 것임은 물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부정한 국제법위반행위에서 출발했다.

또 지난 기간 동안 계속되어온 6자회담의 진행과정을 자세히 관찰한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두 차례에 걸친 핵실험, 두 차례에 걸친 NPT 탈퇴와 IAEA사찰요원의 추방, 북한에 관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두 차례에 걸친 대북제재결의를 상기한다면 9.19성명은 이미 그 효력을 상실한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미중 공동성명의 한반도 관련조항은 이미 죽은 9.19성명을 살아있는 문서로 부활시키고 있다. 죽은 문서가 살아나면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두 차례에 걸친 대북제제결의는 사실상 그 효력이 부정되거나 중지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중국은 이번 회담에서도 북한을 감싸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이론가들은 중국이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에 미국과 더불어 우려를 표시한 점을 평가하지만 필자는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큰 원칙에서 보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고 본다.

이 공동성명이 우리에게 던지는 두 번째 문제는 북 핵 처리에 관한 구체적 조치나 시한을 말하지 않고 남북한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남북대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선군정치와 핵개발이 남북관계의 개선을 가로막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문제점을 강력히 지적하기 보다는 남북한이 당사자로서 진정성 있는 대화에 나설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남북한은 당사자로서 언제나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대화를 추진해야 하고 또 대화를 통해 남북한 간의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위이다. 뿐만 아니라 대화이익이 대결이익에 우선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대화가 진척되지 않는 이유는 남북한이 대화의 유용성을 몰라서가 아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국제여론을 외면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력 집중하는 북한을 상대로 한국이 남북한관계개선을 위해 제시할 카드가 무엇인가. 한국이 결과적으로 북한 핵개발을 뒷받침했던 햇볕정책체제로 되돌아가란 말인가, 아니면 한미안보협력을 포기하란 말인가.

이 두 가지의 어느 것도 아니라면 현시점에서 한국이 남북한 관계를 실효적으로 풀어가는 방법은 오직 하나, 한국이 조속히 핵 국가의 반열에 올라 남북한이 서로 보유하고 있는 핵과 미사일의 상호포기를 시행할 여건을 마련하는 도리밖에 없다. 모든 군축협상은 피차간에 군사력이 대칭적이고 교환이익이 균형을 이룰 때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간 북한은 연방제나 국가연합방식에 의한 통일을 주장해왔고 중국도 북한의 통일방안에 지지를 보낸바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한국이 비핵상태에 놓여있는 안보불균형상태 하에서는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통일이나 국가연합방식에 입각한 통일 모색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미국과 중국은 이번 공동성명에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한반도의 비핵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공감을 표시”했는데 한국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한반도의 비핵화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식한다. 한반도의 비핵화 없이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대한 국제적 협력과 지지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독일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주요한 여건의 하나는 양 독이 비핵화의 약속을 성실히 이행한 것이다.

현시점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대화를 통해 실천하는 방법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한국의 유핵(有核)정책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아니면 6자회담을 주도한 중국과 미국이 북한 핵 포기를 가져올 구체적 조치와 일정을 마련하고 그것의 실현방식을 9.19성명에 적합토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와 계획을 수반하지 않고는 남북한관계를 개선할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대화를 현실적으로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상에서 지적한 문제의식을 남북한이 국제사회와 더불어 공유하기 위해서라도 남북한이 당장의 성과에 관계없이 모든 수준에서의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미중공동성명에서 주목해야할 세 번째 문제는 미중양국이 그리는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구도가 중첩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중점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시킨 정전체제를 중심으로 이 지역에서의 긴장완화와 안정유지의 조건을 발전시켜나가자는데 반해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법적으로 종결시키는 평화협정체결을 통해 미국이 이 지역에서 미치는 안보영향력을 줄여나가자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이 정의하는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의 잠재된 개념 속에 이러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간 중국외교부가 이명박 대통령이 그의 최초의 중국방문 당일 한미방위동맹을 “냉전시대의 유물”이라고 외교관례를 무시하면서까지 강력히 비난한 까닭도 바로 이러한 잠재된 요구의 한 표현일 것이다. 결국 중국은 한국이 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의 대중국 견제망의 일부로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내비치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외교의 새로운 도전이 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동북아시아에서 펼쳐지고 있는 강대국들의 새로운 질서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벗어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안보질서의 모델과 통일추진의 여건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의 첫째 조건은 강대국들을 향하여 우리나라의 의지와 신념을 내세울 自彊노력이다. 그것은 국제정치론이 지금까지 그 유용성을 공인하고 있는 MAD(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즉 "확증된 상호파괴능력"을 반드시 보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이 가져야 할 한반도 비핵화의 실질적 협상 조건이며 평화통일의 여건 조성방안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강대국의 의사에 맹종하는 시대가 아니다. 잘 조직화된 국력을 국제사회에 우리의 의지를 관철할 실력으로 표시해야 한다.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하루속히 국론을 통일하고 안보분야에서 자강능력을 배양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한다.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19세기말이 아니다. 한국은 유엔의 당당한 회원국이며 G20회의를 주도하는 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동아시아 시대의 주요한 역할자로서 자리매김 되어 있다. 우리의 강점을 안보와 통일의 밑천으로 키워나가야 할 때다.

李榮一ㆍ韓中文化協會ㆍ總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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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이영일의 홈피 http://201korea.tistory.com과 국제문제연구원 간행 ‘국제문제’2011년2월호에 기고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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