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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꽃아줌마, 여자는 그 나이마다 아름다움이 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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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25일 기혼녀 미인대회인 ‘미세스 글로브’ 한국대표 선발전에서 ‘탤런트상’을 받은 정하나씨와 가족들. 왼쪽부터 작은 아들, 조카딸, 정씨, 여동생. [사진=미세스 글로브]

스물 두 살 아가씨는 꽃처럼 예뻤다. 여기 저기서 “미스코리아 나가야겠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나처럼 특별하지도 않은 사람이 무슨….” 나가 보고픈 마음은 있었지만 자신감이 부족했다. 그렇게 35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녀는 예순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서른 살 어린 여자들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미인대회 무대에 나가 당당히 입상했다.

 정하나(57)씨는 25일 서울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미세스 글로브’의 첫 한국대표 선발전에 출전했다. 미세스 글로브는 ‘미스 월드’, ‘미스 인터내셔널’과 함께 세계 3대 미인대회로 꼽히는 아줌마들의 축제다. 1996년 첫 세계대회가 열린 뒤 올해 처음으로 한국대표 선발전이 개최됐다. 정씨는 이날 무대에 선 26명의 본선 진출자 중 최고령자였다. 가장 어린 27세 출전자와 꼭 서른 살 차이다.

 “아들 둘의 엄마, 갓난 손자를 둔 할머니로서 기혼 여성의 힘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한류 열풍에 버금가는 ‘꽃아줌마’의 매력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노란색 무대조명 아래 경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키 163cm에 50kg 후반의 몸무게. 여느 미인대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신체조건이다. 어깨가 드러난 살구색 드레스를 입자 정씨의 얼굴 아래로 통통한 팔뚝이 드러났다. 정씨는 이를 ‘아줌마 수퍼파워’라고 했다.

 이날 정씨는 자기보다 어린 25명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탤런트상’을 받았다. 가장 많은 끼를 보여준 참가자에게 주는 상이다. 청바지 심사가 끝나고 이어진 장기자랑 무대에서 정씨는 라틴댄스를 완벽하게 소화해 보여줬다. 나이를 잊은 그녀의 화려한 춤사위는 심사위원과 청중들로부터 가장 큰 박수를 끌어냈다. 그녀는 자신 있게 드러낸 양 팔로 현란한 춤 동작을 선보였다.

 대회가 끝나고 수상 비결을 묻자 “꾸준히 노력한 덕”이라는 모범답안이 돌아온다. 정씨는 “여자는 나이에 상관없이 그 시절만의 아름다움이 있다”며 “오히려 젊었을 때는 없던 자신감이 생기게 됐다”고 했다. 이날 장기자랑에는 20대~50대의 참가자들이 밸리댄스, 방송진행 등 다양한 재주를 선보였다. “젊고 늘씬한 참가자들이 많았지만 제가 한 수 위였나 봐요. 사실 1등도 하고 싶었는데. 호호.”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노래교실을 운영하는 정씨는 일주일에 2~3회 라틴댄스를 춘다. 20년 넘도록 해온 취미생활이다. “60세가 넘으면 반드시 춤과 노래를 배워야 해요. 젊게 보이는 얼굴 근육을 쓰니까 더 아름다워지고, 엔돌핀이 나오니까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죠.” 정씨는 “우리나라도 이제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만큼 나이 든 사람들이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스스로를 ‘꽃할머니’, ‘꽃아줌마’라고 불렀다. ‘꽃미녀’, ‘꽃미남’을 물리칠 수 있는 매력을 가졌다는 뜻에서다. 정씨는 젊을 때 못 나가본 미인대회를 이제야 나가 본다며 “내가 이 나이를 먹어서 정신을 차렸다”며 웃었다. “이젠 아직 인생의 쓴 맛도 모르는 개미허리 미스코리아 대신 수퍼파워 아줌마를 뽑아야 할 때 아닐까요?” 그녀 눈가에 고운 주름이 졌다.

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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