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이명박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의 만남은 눈길 끄는 대목이 많았다. 우선 장소가 청와대가 아닌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의실이었다. 참석한 26명 회장들의 가슴에는 명찰이 없었다. 다 아는 사람들인데 딱딱하게 이름표를 달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주로 말하고 회장들은 듣기만 하던 진행방식도 달라졌다. 두 시간 중 대통령은 간단한 인사말만 했고, 나머지는 회장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다. 권위주의적 격식을 많이 벗어던졌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럼에도 개선할 여지는 보인다. 간담회는 격의 없이 자유롭게 대화가 오갈 때 의미를 더한다. 하지만 이날 회의는 회장들이 각자 올해 투자와 고용을 얼마나 늘리고,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은 어떻게 할 것인지 ‘보고’하는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답변 중에 걸리는 게 있다. “기업이 R&D(연구개발)센터를 서울이나 수도권에 설립할 수 있도록 적극 추진하겠다”는 발언이다. 이 대통령은 “R&D센터를 수도권에 두면 고급 인력을 데려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수도권 R&D센터 건립은 기업들의 오랜 바람이다. 회장들은 간담회에서 이 애로사항을 꺼냈고, 여기에 대통령이 화답한 것이다. 재계에서는 벌써부터 R&D센터 후보지가 거론되고 있다.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가는 과천청사 부지와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 터가 유력하다는 것이다. 수도권에 R&D센터를 짓지 못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땅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여유 부지가 대부분 국유지나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데, 이걸 좀 풀어달라는 것이다. 현재 지방에 있는 연구소를 수도권으로 옮길 경우 지방 정부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대통령이 기업의 애로사항을 경청하는 것은 박수 받을 일이다. 하지만 처리 방식이 갑자기 선물을 주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대통령이 나서지 않아도 정상적인 행정절차를 밟아 해결될 수 있어야 한다. 윗사람의 한마디에 막혔던 일이 쉽게 풀린다면 우리 사회가 아직 세련되지 않았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