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슨·노키아와 5년 경쟁 … 한발 앞서 4G 터뜨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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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국무총리(왼쪽)가 25일 대전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4세대 이동통신기술 개발보고회에서 3D 동영상 서비스 시연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보시는 동영상이 이동통신망으로 전송되는 화면입니다.”

 25일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4층. 박애순(47·사진) 차세대이동단말연구팀장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동통신망으로 내려받은 동영상인데도 풀 HD급의 3D 화면이 흔들림 없이 잡혔다. 가정용 TV처럼 여러 개의 동영상이 동시에 재생되기도 했다. ETRI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4세대(4G) 이동통신시스템 기술이 시연되는 순간이었다.

 33명의 연구원과 함께 이번 기술 개발을 이끈 박애순 팀장은 “표준 특허 24건, 특허 400건을 확보하며 4세대 이동통신 시스템 기술을 선점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이 기술로 향후 국내 단말기 업체와 기지국 장비 업체 등이 약 360조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특허료 수입만 4000억원으로 추산된다.

 ETRI가 개발한 4세대 이동통신시스템 기술의 핵심은 빠른 데이터 전송 속도다. CD 1장(700MB) 분량의 영화를 9.3초 만에 다운받을 수 있는 기술이다. 현재 상용화된 3세대 이동통신의 전송 시간(6분30초)보다 42배 빠르다. 하반기에 상용화되는 3.9세대 이동통신 기술보다도 6배 빠르다. ETRI는 5년간의 개발 끝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이 기술을 시연 단계로 끌어올렸다. 경쟁 상대인 스웨덴의 에릭슨, 핀란드의 노키아보다 훨씬 빠른 것이다.

 박 팀장은 5년간의 개발 기간을 “초조함의 연속”이라고 돌아봤다. 원천기술을 얼마나 선점하느냐 마느냐가 한국의 기술료 수입 규모를 결정하기 때문에 “1초라도 빨리 개발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것이다. 숱한 밤을 새우며 연구에 매달렸다. 연구가 막바지에 접어든 지난해 11월부터는 전 직원이 ‘야근 발령’을 받았다. 공식적으로 “야근을 해서라도 개발을 앞당기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다.

 이런 강행군 덕에 4세대 이동통신 기술 시장에선 한국의 표준특허 점유율이 23%를 넘을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3세대(10% 안팎)와 3.9세대(19%) 이동통신 시장에서의 표준특허 점유율보다 크게 앞선 수치다. 박 팀장은 “단말기와 기지국 사이에 넓은 길을 뚫어주는 기술을 확보했다고 생각하면 쉽다”며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보내는가가 최적인지를 결정하는 기술도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연구 환경이 열악해 연구원들이 고생할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사람이 지나가도 무전 전파가 잘 잡히는지를 실험하기 위해 연구원들이 돌아가며 맨손으로 안테나를 잡아 시험을 하기도 했다. 방음장치가 설치되기 전까지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시끄러운 고성능 기지국 장치 옆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박 팀장은 “남성 연구원이 대다수인 팀에 저를 팀장으로 앉힌 것도 감성 정치에 강해서인 것 같다”며 웃었다.

 이번에 개발된 기술은 2014년께 상용화될 전망이다. 박 팀장은 이미 4세대와 5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잇는 ‘비욘드 4G’ 기술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막대한 경제적 파급효과 덕분에 각 나라의 기술개발 경쟁이 그야말로 전쟁 수준”이라며 “한번 뒤떨어지면 차세대 성장동력을 고스란히 잃게 된다”고 말했다.

대전=임미진 기자

◆4세대 이동통신시스템=LTE(Long Term Evolu­tion)-어드밴스드(advanced)로 불린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최대 600Mbps인 초고속 이동통신 기술이다. 상용화되면 현재 가정에서 쓰는 초고속 인터넷보다 6배 빠른 속도로 스마트폰에서 인터넷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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