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해적이 로켓포로 최영함 겨냥, 저격 조금만 늦었다면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청해부대 최영함의 해군 특수전 여단(UDT/SEAL) 요원 25명이 ‘아덴만 여명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하루가 지난 22일 최영함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영함 소속 특수전 요원 30명 가운데 3명은 지난 18일 1차 작전 때 부상을 당해 치료 중이고, 2명은 삼호주얼리호에 승선해 호위 근무를 하고 있다. 요원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것은 대테러 진압작전·대북특수 임무 등에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해군 제공]


해군이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작전인 ‘아덴만 여명작전’에 참가한 청해부대 최영함 장병들의 수기를 24일 공개했다. 21일 삼호주얼리호 공격팀 선두에 섰던 해군 특수전여단(UDT/SEAL) 김규환 대위와 최영함 저격수 박모 중사 등의 결의가 담겼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과정들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해군은 요원들의 추가 대테러·침투 등 특수 임무를 감안해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특수전여단 공격1팀장 대위 김규환

 21일 새벽 3시. 눈을 떴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구나’. 피탄 고글이 눈에 들어왔다. 사흘 전 1차 작전 때 선두에 서서 작전을 하다 부상한 대장(안병주 소령)의 고글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대로 잠을 잔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대원들은 밤새 잘 잤느냐는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았다. “역사적인 날에 우리 대원들과 함께 있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 뒤 늘 하듯 파이팅을 외쳤다. 전투배치 방송이 나오고 중갑판으로 이동했다. 고속단정 진수 후 은밀 기동을 시작했 다.

 링스헬기가 K-6 사격을 가하고 최영함에서 포 사격이 시작됐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간간이 들리는 저격수의 사격소리를 들으며 선체 등반을 위해 접근을 시작했다. 1팀의 안착 소식이 들렸다. 성공이다. 대테러 작전에서 중요한 것은 팀워크와 믿음이다. 평소 피나는 훈련과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닌, 몸이 알게 하는 것이다. 선교에서 선원들의 사진을 대조해 가며 신원을 확인할 때 그들의 안도하는 모습과 우리를 향해 박수쳐 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특수전여단 공격팀 김모 중사

 18일 오후 해적들이 몽골 국적 화물선을 납치하려는 순간 해적들을 타격하기로 했다. 고속단정으로 내려가 삼호주얼리호로 접근하는 5분 남짓, 삼호주얼리호 추격에 나선 이후 느꼈던 공포감이 다시 엄습했다. 동료들이 나의 얼굴에서 공포감을 느낄 수 없도록 검은 두건을 치켜 올렸다. 애써 눈에 힘을 주었다.

 해적들이 총격을 가했다. 옆 배에서 검색대장(안병주 소령) 등 동료들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고속단정의 정장들이 황급히 최영함으로 달렸다. 3명이 다쳤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총격전에서 부상을 입은 동료를 처음 본 탓에 가슴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20일. 작전을 앞둔 마지막 브리핑을 마치고 잠자리에 누워 한참을 생각했다. “나도 죽을 수 있다, 하지만 명예롭게 죽자. 나는 불가능을 모르는 UDT/SEAL 특전용사다.” 21일 새벽. 1차 진입 때와 달리 다들 덤덤해 보였다. 고속단정이 하강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최영함 뒤에서 기동을 시작했다. 은밀히 기동한 지 20분째, 링스헬기에서 빨간 불빛들이 삼호주얼리호로 내리꽂혔다. 최영함도 사격을 시작했다. 삼호주얼리호 선미를 향해 돌진했다. 선교에 진입해 해적을 제압했다. 선교 모퉁이에 선원들이 두려움으로 고개를 떨어뜨린 채 모여 있었다. “대한민국 해군 청해부대입니다! 한국 사람은 고개를 들어 주십시오!” 선원들은 안도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원 1명이 “해적이 선장을 쐈다”고 소리쳤다. 바로 옆에 선장이 총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다. 의식은 있었고, 지혈을 했다. 선장이 해적에 대항했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선원들이 우리 대원들의 손을 꼭 붙잡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심장 주변이 뜨거워졌다.

 ◆저격수 박모 중사

 최영함의 가장 높은 곳인 마스트에서 은밀히 몸을 숨긴 채 저격수 임무를 하고 있었다. 흔들림도 많았지만 완벽한 임무수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작전이 시작됐다. 공격팀 등반을 엄호하기 위한 사격을 실시했다. 순간 해적 중 1명이 RPG-7 로켓포를 최영함 쪽으로 겨냥하는 것을 식별했다. 조준사격으로 무력화시켰다. 1발이라도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면 아군 피해도 상당했을 것이다. 공격팀들이 등반을 위해 삼호주얼리호에 근접하는 동안 함미·중갑판·함교 등 선박을 이 잡듯이 살펴보며 엄호사격을 실시했다.

 ◆병기 중사 신명기

 함교 K-6 기관총 통제요원인 나의 임무는 원거리 사격으로 또 다른 해적이 합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며칠간 계속된 임무로 피로가 많이 쌓여 있었지만 그동안 위협사격을 통해 탄착점을 스스로 몸에 익혀 자신감이 생겼다. 21일 새벽. ‘총원 전투배치! 실전!’ 명령이 떨어졌다. 링스헬기가 항공사격을 시작하면서 해적들이 시선을 우현으로 돌리는 사이 최영함은 좌현의 해적들을 향해 집중 사격하기 시작했다. “근접 전투요원, 쏘기 시작!” 방송이 나왔을 때 나는 내가 맡은 선교 구역을 향해 엄호 및 지원 사격을 실시했다. 두려움조차 느낄 시간적 여유도 없이 해적들을 향해 M-60 기관총의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해적들은 우리 배를 향해 응사하지 못했다.

정리=김수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