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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처리, 법대로만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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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남윤호
경제 선임기자

“외환은행 말살하는 론스타를 응징하자.”

 “론스타만 살찌우는 하나금융 결사반대.”

 요즘 외환은행 본·지점 건물에 나붙어 있는 벽보다. ‘론스타는 나쁜 놈, 그와 거래하는 하나금융도 마찬가지, 외환은행은 불쌍한 희생자’라는 뜻을 행간에 듬뿍 담고 있다.

 외환은행, 도대체 누구 것인가. 미국의 사모펀드 론스타 것이다. 론스타가 지분 51.02%를 갖고 있다. 그런데 주주에 대한 윤리를 규정한 외환은행 윤리강령 제2장을 보자. ‘주주 이익의 보호’와 ‘주주의 정당한 권리행사 보장’이 두 기둥이다. 그럼 헷갈리지 않나. 보호 대상인 최대주주가 동시에 응징 대상이라니.

 헷갈림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즉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를 둘러싸고 어지러운 구호와 주장들이 난무한다. 예민한 사적 이익들이 얽혀 있기 때문일까. 모순적인 내용이 있는가 하면 논리보다 감정을 자극하는 경우도 많다.

 가장 악질적인 게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가 국부유출이라는 주장이다. 5조원이나 되는 돈이 론스타의 수중에 들어간다더라 하는 말에 피가 끓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국부유출론은 바로 이들을 노린 선동이다.

 조금만 따져보자. 국내 인수자 입장에선 현금이 나가고, 외환은행이라는 자산이 들어온다. 돈 주고 샀는데 뭐가 국부유출인가. 두산인프라코어가 미국의 밥캣을 인수하고, 한국석유공사가 영국의 다나 페트롤리움을 사들인 것은 또 어찌 볼 건가. 석유공사의 다나 인수 기념식엔 우리 국회도 대표를 보내 축하해 줬다.

 값을 비싸게 쳐줬기 때문에 국부유출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가격은 거래 당사자 사이의 문제다. 또 얼마가 적정가격인지는 누구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감정 차원의 론스타 응징론도 거세다. 문제는 현실적인 방법이나 근거가 없다는 거다. 그래서 공허할 뿐이다.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을 박탈하자는 주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금융위원회가 계속 미뤄온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마무리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 경우 론스타는 외환은행 주식을 팔아야 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론스타가 바라는 바다.

 론스타가 프리미엄을 못 받게 지분을 조각내 블록세일하게 만들자,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을 아예 몰수하자, 외환은행을 국유화하자는 극단론도 있다. 모두 우리 금융당국의 법적 권한 밖이다. 그런데도 이에 동조하지 않으면 매국노로 여기는 흑백론이 여전하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한 나라가 수틀리면 외국 자본을 몰수하면서 막 가자는 얘기인가.

 이에 비하면 하나금융의 자금력을 문제시하는 주장은 나름 현실적이다. ‘단자회사 출신이 감히 엘리트 은행을 가져가다니’ 하는 자존심 문제가 깔려 있긴 하지만 말이다. 힘에 부치는 인수합병(M&A)을 하다가 스스로 주저앉는 ‘승자의 저주’가 그 근거다.

또 사모펀드의 투전판이 된다는 비판도 있다. 하나금융이 해외 투자자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하나금융의 자금조달에 대해 제3자가 이래라 저래라 하며 개입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금융위가 승인 심사를 하면서 잘 따져 거를 문제다.

 이처럼 쌍심지를 켜고 들여다 보는 이해관계자들이 많을 때 당국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다. 법대로만 하는 거다. 그 결과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가져가든, 못 가져가든 상관없다. 제3자가 새로 나타나 인수해도 된다. 또 론스타가 떼돈을 벌더라도 그 역시 할 수 없다. 법에 따라 세금만 제대로 매기면 된다.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신뢰의 담보물이다. 몇 년 뒤 또다시 의혹이다, 게이트다 하는 불필요한 소동을 벌이진 말자. 오는 30일 창립 44주년을 맞는 외환은행 본점 앞길엔 ‘대한민국 외환은행 우리들이 지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여기서 ‘우리’가 외환은행 직원만이라면 곤란하다. 우리의 법치 수준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

남윤호 경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