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스위스 간 건 방사선 미사일 요법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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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현지시간) 병가를 떠난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Steve Jobs·55)는 2009년 스위스 바젤대학병원에서 암 치료를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갑작스러운 병가의 원인을 추정하는 와중에 과거 잡스가 왜 미국 병원 대신 스위스 바젤대학병원에 갔는지를 놓고 화제가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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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각에서는 잡스가 양성자 치료를 받으러 갔을지 모른다고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양성자로 암을 치료하는 병원은 미국에도 여러 곳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방사선 미사일 치료’를 받기 위해 갔을 것이라는 주장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방사선 미사일 치료’가 미국에서는 승인이 안 돼 할 수 없지만, 스위스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대 정재민 교수 등 국내 핵의학 전문가에 따르면 바젤대학병원은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해 잡스가 앓았던 암인 신경내분비암세포만 공격해 치료하는 ‘방사선 미사일 치료법’을 오래전부터 개발해 왔다. 2004년에도 신경내분비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된 환자 5명을 이같이 치료하고 그 결과를 학술지 ‘유럽 핵의학 및 분자 영상’ 등에 발표했다. 바젤대학병원 연구팀은 “이 치료를 받은 환자들에게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고 효과도 좋았다”고 밝혔다.

 ‘방사선 미사일 치료법’은 특정 암(잡스의 경우 신경내분비암)세포만 찾아가 치료용 방사선을 내뿜도록 특수 개발된 방사성 의약품을 사용한다.

 원리는 이렇다. 우선 신경내분비암세포에만 달라붙는 단백질 ‘옥트레오타이드’를 만든다. 옥트레오타이드는 다른 암세포나 정상세포에는 잘 붙지 않는다. 여기에 방사선을 내뿜는 방사성동위원소 이트륨(Y)-90이나 루테슘(Lu)-177을 결합시킨다. 그런 뒤 환자에게 주사한다. 그러면 이 약물이 혈액을 타고 인체 곳곳을 다니면서 신경내분비암세포에만 달라붙는다. 이어 약물과 암세포의 전쟁이 시작된다. 약물 분자 하나하나가 내뿜는 방사선은 약하지만 무더기로 암세포에 달라붙어 한꺼번에 내뿜으면 암세포를 죽이기에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화여대 약학과 이윤실 교수는 “방사성 의약품은 암세포만 찾아 죽이는 것으로, 전이된 암세포까지 구석구석 찾아가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잡스는 그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다는 게 이 교수의 추측이다. 정재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에도 신경내분비암을 방사성동위원소로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있지만 정부 승인이 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방사성동위원소로 ‘미사일 요법’을 쓸 수 있는 암 종류는 아직 많지 않다. 방사성동위원소를 매달고 특정 암세포만 찾아갈 수 있는 항체 개발이 어려워서다. 현재까지 백혈병·림프종·간암·흑색종 치료용 항체가 개발돼 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미사일 요법=주변의 정상세포에는 해를 끼치지 않고 암세포만 골라 공격·파괴하는 암 치료법. 특정 표적을 쫓아가 타격하는 미사일과 비슷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세포를 파괴하는 독소·약제·방사성동위원소 등을 특정세포에만 달라붙는 단백질 등에 결합시켜 만든 치료제를 사용한다. 치료제가 표적세포에 부착되면 독소 등이 작용해 표적세포를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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