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퇴계 가라사대 ‘벼슬 걱정 참 비루하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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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퇴계, 인간의 도리를 말하다
김영두 풀어 옮김, 푸르메
308쪽, 1만4800원

“일찌기 벼슬길에 나가는 세상 사람들을 보니 마치 개미떼가 양고기 누린내를 좋아하여 몰려드는 것 같았다. 벼슬을 얻어도 걱정, 잃어도 걱정하는 모습이 말씨나 표정에 드러나기까지 하니 참으로 비루해 보였다.”

 오늘날에도 뜨끔한 이들이 적지 않을 이 말의 주인공은 퇴계 이황. ‘동방의 주자’로 꼽히며 일본에서도 퇴계학이 성립될 정도로 조선 사상사의 우뚝 솟은 봉우리다. 이 책은 퇴계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이 보고 들은 선생의 언행을 정리한 글 중 학봉 김성일의 『퇴계어록』을 현대어로 옮긴 것이다.

 학문적 주장인 이기론(理氣論)에서 별험(別험嫌· 꺼려야 되는 것을 분별함)까지 20개의 주제로 나눠 제자들에 대한 가르침, 퇴계의 논평, 제자들이 본 그의 처신 등을 담았다. 그중에는 예법의 원칙과 적용 등 21세기를 사는 우리들과 거리가 있는 대목도 있지만 정신 수양법, 책 읽기, 마음가짐처럼 아직도 깊은 울림을 남기는 ‘말씀’들이 적지 않다.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모습’에서는 “반드시 저쪽 말이 끝난 다음에 천천히 한마디 말로 줄거리를 잡아 가리셨다. 그러나 반드시 당신이 옳다고 하지 않고, 다만 ‘나는 이럴 것 같은데 어떤지 모르겠다’고만 하셨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정치판을 비롯해 온갖 어지러운 소음들이 오가는 요즘 세태에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조선 중기 사상사를 전공한 이가 옮긴 글 또한 단아해 읽는 맛이 그윽하다.

김성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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