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성 잡아내는 0.3초의 과학 … 볼보는 1년에 400대 부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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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자동차 안전기술이 진화하면서 충돌테스트 또한 나날이 엄격해지고 있다. 사진은 볼보의 충돌테스트 장면.


국산차의 안전장치 기본 장착이 확산되는 한 이유는 세계 각국에서 충돌테스트 기준이 강화돼서다.

 자동차 충돌테스트는 ‘신차 평가 프로그램’의 줄임말인 ‘NCAP’로 널리 알려져 있다. 충돌테스트의 세계 표준은 아직까지 없다. 주요 국가별로 각기 다른 기관에서 테스트한다. 자동차 업체 역시 자체적으로 충돌테스트를 치른다.

 우리나라는 1999년 이후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성능연구소에서 충돌테스트를 하고 있다. 미국은 교통부 도로교통안전청(NHTSA)과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 일본은 국토교통성 자동차사고대책기구, 유럽은 EU 집행위원회에서 충돌테스트를 진행한다.

 1997년 유로 NCAP가 처음 시행될 때만 해도 별 다섯 개 만점을 받는 차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2007년엔 총 34개 차종 가운데 33개가 별 네 개 이상을 받았다. 따라서 유로 NCAP는 2009년부터 테스트를 강화했다. 주행안정장치 같은 능동형 안전기술에 대한 평가를 더했다. 후방추돌 테스트도 추가했다. 앞좌석 승객의 목과 척추 상해를 가늠하기 위해서다.

 일본은 2008년부터 사이드 커튼 에어백 장착 여부를 충돌테스트 평가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미국 역시 2008년 이후 주행안정장치 등 안전장비를 갖춘 차에 가산점을 주고 있다. 나아가 2011년 9월부턴 4.5t 이하의 모든 신차에 주행안정장치를 의무적으로 달도록 했다.

 충돌테스트는 실제 사고의 유형을 감안해 구성된다. 유로 NCAP의 경우 시속 64㎞로 달리다가 차 앞쪽의 절반만 벽에 부딪치는 전면 ‘오프셋’ 충돌, 차체 옆면에 자동차 비슷한 구조물을 시속 50㎞로 부딪치는 측면충돌, 차체 옆면에 기다란 막대를 시속 29㎞로 충돌시키는 폴 테스트, 인체 모형을 시속 40㎞로 충돌시키는 보행자 안전테스트 등으로 구성된다.

 과거엔 자동차에 시신을 앉혔다. 그러나 윤리적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노약자 시신이 대부분이어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이후 마네킹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엔 미국에서 개발된 1m78㎝, 체중 75㎏의 성인남자 인체모형 ‘하이브리드Ⅲ’가 주로 쓰인다. 인체모형의 각 부위엔 각종 센서가 달려 3만5000개 이상의 자료를 제공한다.

 충돌테스트 결과는 충돌 때 인체모형에 전해진 충격량을 다섯 단계로 나눠 별로 표시한다. 별이 많을수록 안전하다는 뜻으로 만점은 별 5개다. 주요 테스트에서 몇 개의 별을 받았느냐에 따라 각 메이커의 희비가 엇갈린다. 충돌테스트 결과가 해당 차종의 판매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까닭이다.

 테스트 준비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정작 충돌은 0.3초 만에 끝난다. 정확한 자료를 얻기 위해 1초에 3000프레임을 찍는 초고속카메라 20대와 8㎾ 조명 32개를 동원한다. 조명은 충돌 5초 전에 켜서 충돌 직후 끈다. 테스트를 한 번 진행하는 데 1억원 이상이 든다. 안전한 차로 유명한 볼보는 연간 400대 이상의 자동차를 충돌테스트로 부수고 있다.

김기범 중앙SUNDAY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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