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교묘해지는 보이스피싱 방치해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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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보이스피싱(Voice Pishing, 전화금융사기)의 진화가 무섭다.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교묘해진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노인이나 판단력이 흐린 사회적 약자만 당하는 게 아니다. 전 국민을 잠재적 피해자로 올려놓은 악질적인 범죄로 발전했다. 국내외에서 걸려오는 사기전화를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지경이다. 정부의 대책은 스스로 알아서 조심하라는 게 고작이다. 도둑이 설치면 집 단속은 1차적으로 개인의 책임이다. 하지만 도둑이 날뛰지 못하도록 사회적 치안환경을 만드는 건 정부의 책무다.

 최근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자녀를 납치했다며 돈을 요구하는 보이스피싱이 극성이라고 한다. 엘리트에 속하는 한 여성이 전화사기에 속아 2000만원을 날렸다는 중앙일보 보도(1월 19일자 18, 19면)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는 경각심을 새삼 일깨운다. 범인들이 피해자의 거주지까지 파악하고 있었다니 섬뜩하다. 자녀 납치 협박을 비롯해 수사·금융 기관 등을 사칭(詐稱)하거나 우체국 택배물 반송을 빙자하는 등 보이스피싱의 유형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해졌다. 한때 국제통화가 기승을 부렸으나 요즘은 경찰청 민원실 전화번호나 회사의 콜센터 번호가 뜨도록 조작해 쉽게 넘어오도록 한다.

 그 폐해는 날로 커지고 있다. 2006년 5월 보이스피싱이 처음 확인된 이래 지난해 말까지 5년간 2만6000여 건에 피해액 2600억원에 달한다는 게 경찰 추산이다. 연간 5000건씩, 한 달에 400건 넘게 주변에서 횡행(橫行)하는 셈이다. 경찰에 신고되지 않은 경우를 감안하면 피해는 훨씬 클 것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정부는 의심되는 전화를 받으면 경찰·은행에 신고하라는 식의 계도(啓導)와 홍보에 치중하고 있다. 사기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계좌에 대해 단속을 벌이고, 중국 등과 국제공조를 강화한다고 법석을 떨었지만 보이스피싱이 줄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보이스피싱은 날고 있는데 정부의 대책은 기는 양상이다. 보이스피싱은 이제 ‘범죄산업’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민생범죄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전쟁이라도 벌이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보이스피싱은 국민을 계속 괴롭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