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션 겹치던 구자철·기성용 … 별거 끝, 동거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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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오른쪽)이 지난 4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린 기성용과 함께 찍은 사진. [출처=구자철 미니홈피]

22살 동갑내기 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과 기성용(셀틱)의 ‘화려한 동거’가 시작됐다.

 두 선수의 포지션과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해 함께 기용하기 어렵다는 통념은 아시안컵이 열리는 카타르 도하에서 깨졌다. 구자철은 패스하고 골도 넣는 ‘미들라이커’로 변신했고, 기성용은 부딪히고 태클하고 볼을 지켜내는 ‘싸움닭’으로 탈바꿈했다.

구자철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뽑은 3골을 혼자 터트리며 킬러로 발돋움했다. 기성용은 세련되고 예쁘게만 축구 하던 스타일을 버리고 과감한 태클과 몸싸움으로 무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이 뛰고 있다. 기성용은 두 경기에서 21.3㎞를 달려 팀 내 1위를 기록했다. 뛰는 양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박지성(20.45㎞)이 무색할 지경이다. 구자철과 기성용이 새로운 동거 방식에 적응하면서 한국 축구의 중원은 튼튼해졌다.

 그동안 대표팀 감독들은 구자철과 기성용을 함께 내세우지 못했다. 두 선수 모두 공격 성향이 강해 함께 내보냈다가는 수비가 구멍 날 것으로 우려했다. 지난해 6월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허정무 대표팀 감독(현 인천 감독)은 구자철을 최종 엔트리에서 빼고 기성용을 선택했다. 지난해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둔 홍명보 감독은 셀틱에서 8강전 이후 기성용을 보내주겠다고 제안하자 딱 잘라 거절했다. 구자철을 믿었기 때문이다.

 조광래 감독도 처음엔 구자철과 기성용을 동시에 기용할 생각이 없었다. 박주영(AS 모나코)이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지자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고민하다 마지막으로 뽑아 든 카드였다. 우연히 만든 작품이었지만 조 감독은 불안해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에서 맹활약한 구자철을 대표팀으로 부른 조 감독은 지난달 초 서귀포 전지훈련 때부터 그를 처진 스트라이커로 활용하며 킬러 본능을 살려냈다. 기성용이 싸움닭으로 변모한 것도 조 감독과 무관하지 않다. 조 감독은 수시로 기성용에게 전화를 걸어 “거칠고 몸싸움이 심한 스코틀랜드 리그에서는 얌전한 스타일이 통하지도 않는다”고 조언했다.

 두 경기를 했을 뿐이지만 구자철-기성용 조합은 위력적이었다. 11일 바레인과의 경기 전반 40분 한국이 뽑아낸 첫 골은 기성용의 패스에 이은 구자철의 슛으로 완성됐다. 14일 호주와의 경기에서도 기성용은 엄청난 거리를 달리며 궂은일을 마다 않는 플레이로 구자철을 지원했다. 기록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구자철은 슛(7개)과 득점(3골)·슛정확도(71.5%)에서 기성용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반면 기성용은 패스(92회) 횟수가 구자철(47회)의 두 배 가까이 많았고, 인터셉트(12개·구자철 4개)도 많이 해냈다. 인상적인 부분은 구자철은 태클이 한 번도 없었던 데 비해 기성용은 6번이나 시도했다는 점이다. 구자철의 화려한 플레이 뒤에 기성용의 헌신이 있다는 증거다.

 이들은 도하에서 절친으로 거듭나고 있다. 바레인전을 앞두고 기성용은 구자철의 미니홈피에 “낼(내일) 한 골 넣어라. 뒤에서 응원하마”라고 응원했다. 구자철은 “네가 최고다 진짜! 다음 경기에는 내가 어시스트할 거다. 그리고 너무 많이 뛰지마, 쓰러질까 겁나”라고 화답했다.

최원창 기자, 도하=김종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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