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더 배워야” 이건희 회장 발언에 숨은 뜻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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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이건희(사진) 삼성전자 회장은 틈만 나면 ‘일본 배우기’를 강조했다. 지난해 4월 일본 경제인들과의 만찬 때도 “삼성이 최근 몇 년간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일본 기업으로부터 더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에도 이 회장은 “(일본에서) 더 배울 것이 많다. 한참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 뒤 일본 출장 길에 올랐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정황상 평소의 ‘일본 배우기’를 뛰어넘는 포석이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 다독이기’다.

 16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매출 150조원을 넘어서며 글로벌 1위의 정보기술(IT)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소니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이 삼성전자와의 제휴나 협력을 꺼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최근 소니 측이 예정된 미팅을 일방적으로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이 회장에게도 이 같은 내용이 출장을 떠나기 전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신기술 개발을 위해 협력한 몇몇 프로젝트 결과 이를 응용해 발전시키는 속도가 삼성이 월등한 것으로 거듭 입증되면서 일본 업체들이 ‘삼성과 만나봐야 득이 될 게 없다’는 생각을 갖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2011)에서 소니는 액정화면(LCD) 패널의 공급 파트너로 기존의 삼성전자 이외에 LG디스플레이를 추가 선택했다. 소니는 2004년 삼성전자와 S-LCD 합작법인 설립 이후 긴밀한 협업을 유지해 왔다. 이전까지 거래하던 LG와 거래를 끊고 국내 패널 공급업체로 삼성만 상대했다. 그런데 이번에 7년 만에 다시 LG디스플레이와 손을 잡은 것이다.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CES에서 “삼성전자의 비즈니스 모델 특성상 파트너냐 경쟁자냐의 명확한 구분이 없다”며 “소니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소니는 우리가 존경하는 회사”라고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소니는 삼성전자의 매출 가운데 기여도가 가장 높은 기업이다. 지난해 3분기 전체 매출액 40조2292억원 가운데 3.9%인 1조5689억원을 소니가 차지했다. 결국 이 회장이 소니를 비롯한 일본 업체 다독이기 차원에서 “일본을 더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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