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방역대책 ‘일본↔한국’ 서로 베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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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16일 대전의 한 축산농가에서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정부는 구제역 발생농가에 대해선 시가의 일부만 보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을 벤치마킹한 정책이다. [연합뉴스]

일본은 한국 좇아서, 한국은 예전 일본 따라서….

 지난해 이후 동아시아에 번진 구제역 때문에 각국 방역 당국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기존 대응 매뉴얼이 무용지물이 되고, 이웃 국가 사례를 서로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돌고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농림식품수산부 이상길 식품안전정책실장은 16일 “앞으로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에 대해서는 가축을 매몰 처분할 때 시가의 일부만 보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구제역이 발생하면 해당 농가는 물론이고 이로부터 반경 500m 안에 있는 농가에서 기르는 모든 우제류(발굽이 두 개로 갈라진 동물)를 모두 살처분하고 시가로 보상하고 있다. 하지만 구제역이 직접 발생한 농가인 경우 경위야 어떻든 스스로 방역을 철저히 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벌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살처분 보상비만 1조5000억원을 훌쩍 넘어서자 정부 안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의 축산업은 밀집사육 방식이다. 일단 전염병이 발생하면 인근 농가로 쉽사리 퍼질 수 있는 조건이다. 이 때문에 예방적 차원에서 비발생 농가의 가축까지 신속하게 땅에 묻어왔다. 전액 시가로 보상하는 것은 신속한 신고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2002년과 지난해 1월, 4월에 발생한 구제역 사태가 상대적으로 쉽게 종식된 것도 예방적 살처분과 시가보상 체계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반면 일본은 발생 농장의 가축만 땅에 묻었다. 대신 보상은 시가의 60~80%만 해줬다. 그런데 지난해 4월 미야자키현에서 발생한 구제역으로 사정이 달라졌다. 석 달 넘게 종식되지 않고 살처분 가축 수가 약 29만 마리에 이르자 한국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일본 의회는 지난해 결국 반경 500m까지의 예방적 살처분과 시가보상을 규정한 특별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한국이 다시 예전 일본과 같은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이 실장은 “축산현장에서는 방역을 소홀히 한 농가에 대한 원성이 커 소급적용은 않더라도 불이익을 주는 제도 도입이 필요할 것 같다”며 “하지만 이 제도가 우리를 따라온 일본의 예전 방식이다 보니 잘 추진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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