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무상복지의 함정’ … 사회주의 망령 끌어내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박태욱
대기자

무상복지를 둘러싼 논쟁으로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무상급식에서 시작된 논쟁은 무상의료·보육과 반값등록금, 나아가 주거복지로까지 전선을 계속 넓히고 있다. 복지 공세를 펴고 있는 민주당은 일단 이슈화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정치적 이득을 봤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고, 복지 이슈화에 곤혹스러워하던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각종 무상정책 공세를 대국민 기만극으로 몰아치며 역공을 취하고 나섰다. ·

 시작은 무상급식이었다. 저소득층에 주고 있던 무상급식을 의무교육 대상 초·중학생 전체로 확대하자는 주장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밥을 먹더라도 유·무상의 차이에서 가질 수 있는 심리적 아픔을 주지 말자는 의도만큼은 나름 고상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묻고 싶다. 그렇다면 옷이나 신발, 휴대전화와 여러 전자기기들, 하교 후 군것질이나 별도의 영어·예능교습 등에서 느낄, 보다 가시적 차이로 인한 아픔은 어쩔 건가. 어느 것에 아이들이 더 맘 아파할까. 그런데 전면시행의 경우 연 2조원 가까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무상급식도 시작에 불과했다.

 생로병사의 사고(四苦)를 짊어진 인간에게 무상의료는 꾸고 싶은 꿈이었다. 입원진료비 90%를 건강보험에서 부담하고 본인부담을 연 100만원 이내로 한다는 민주당의 안은 그 꿈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도 지난해 건보는 1조3000억원 적자를 냈다. 조금 더 나가 생각해 보자. 우선 대상자의 양적 증가 문제다. 다 알다시피 급속한 고령화란 중대한 요인이 있고, 본인부담의 현저한 감소로 인한 이용 횟수 증가가 뻔히 보인다. 질적 측면에서도 속속 등장하는 새로운 장비·기술·약품들, 또 이에 대한 높아진 욕구에 어디까지 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시스템 측면에서도 공공 의료기관이 10%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물리적으로 대응키도 힘든 여건이다. 아마도 이런 요인들을 무시하고 짰을 민주당 안으로도 추가 소요 예산은 8조1000억원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30조원 이상과의 중간쯤으로 잡아도 올해 복지예산의 거의 20%다. 저출산이 사회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보육비 경감은 중요한 과제다. 민주당은 만 5세 이하의 모든 아동에 대해 어린이집·유치원 비용을 전액 지원하거나 양육 지원 수당을 주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또한 충분히 부담할 여유가 있는 최상위 계층까지도 지원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무료급식과 닮아 있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또 4조1000억원(정부는 10조원)만 쓰면 된다는 것이다. 함께 사는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키 위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중요하다. 그렇다고 그 대상을 70%, 나아가 국민 전체로 삼는 건 난센스다. 왜 낼 능력도, 낼 의사도 있는 사람까지 무상의 함정으로 몰아넣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유일한 장점이라면 선별의 행정적 어려움이나 배분 과정에서의 누수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정도인데 말이다.

 보편적 복지란 말 속에 능력에 따른 부담이란 또 다른 중요한 원칙이 매몰되고 있다. 사회가 나눠야 할 책임을 강조한 나머지 개인이 져야 할 책임까지 약화시키는 이른바 복지국가의 폐해, 나아가 이미 무너진 사회주의의 망령을 끌어내려 하고 있다. 감당키 어려운 재원도 문제지만, 스스로 할 일까지 사회나 정부에 기대려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 그게 더욱 걱정스럽다.

박태욱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