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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위기와 미·중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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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고문

미·중 관계는 한반도 미래에 아주 중요한 변수다. 미·중이 대결 구도로 치달으면 북핵 문제 조정이 힘들어진다. 동시에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 세력 사이에 끼여 어려움을 겪던 과거로 회귀하게 된다. 반대로 미·중이 배타적으로 양자관계를 진전시키면 한국을 포함한 여타 아시아 국가들은 소외될 수 있다. 남북한 지도자들이 19일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에 주목하는 이유다.  

 오바마 대통령과 후 주석은 주요 20개국(G20)이나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자리를 빌려 여러 차례 만났다. 그러나 오로지 양자관계에 초점을 맞췄던 건 2009년 베이징 정상회담뿐이다.

당시 회담은 미국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베이징 당국이 중국 국민과 오바마의 접촉을 막은 데다 양국 공동성명에 ‘중국의 핵심적 이해관계를 존중한다’는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문구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과거 빌 클린턴(Bill Clinton)과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전 대통령 역시 중국 국민과 접촉할 때 중국 정부의 통제를 받았던 사실을 고려한다면 미 언론의 비판엔 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핵심 이해관계 운운한 대목은 작금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미 관계에서 중국이 취하고 있는 자신만만한 태도에 비추어 적절치 않다. 일부 오바마 행정부 관리들도 이 점을 인정한다.

 지난해 미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대해 확실히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중국이 천안함 폭침 사태에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일본 및 여타 동아시아 국가들에 공격적인 입장을 취했던 점을 고려하면 전략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베이징과 워싱턴의 고위 관료들은 미국에서 중국에 대한 비판이 갈수록 거세지고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 반미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양국이 후 주석의 워싱턴 방문 이전에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온 건 그래서다. 후 주석은 여전히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의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 노선을 추종한다. 외교보다는 중국의 평화적 발전과 조화로운 사회 건설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중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관계는 대미 관계라고 말했었다. 워싱턴과 계속 갈등을 빚을 경우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2012년 시진핑(習近平·습근평) 국가 부주석으로의 원만한 권력 이양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래서 후 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워싱턴 정상회담을 통해 대립적인 기존의 태도를 완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도록 중국이 개입한 건 이번 정상회담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난 연말 열렸던 미·중 무역 회담이 그런대로 성공을 거두고 지난해 6월 이후 위안화를 달러화 대비 3.2% 절상시킨 것 역시 정상회담 때문에 가능했다. 최근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 미국 국방장관이 베이징을 방문함으로써 양국 간 군사회담이 재개된 것도 정상회담이 초래한 양국 간 협력의 일환이다.  

 미·중 관계를 바로잡는 것은 중요하다. 정상회담은 안정된 미·중 관계가 국제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일깨워준다. 그러나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 혁명적이거나 큰 변화를 초래하진 못할 것이다. 양측은 아마 협력사항을 장황하게 나열한 공동성명을 발표할 것이다. 미·중 관계의 초석(礎石)을 놓았던 과거의 유명한 성명들 수준엔 미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레임덕을 맞은 후 주석은 장기간 지속될 비전을 밝힐 입장이 아니다. 이번 정상회담을 위해 중국이 다소간 입장 조정을 하긴 했지만 전술적 조정일 뿐이다. 따라서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예컨대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한다면 군사적 협력은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정상회담은 미·중 관계가 어려운 시기에 양국 관료들이 상호 협력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양국 정상의 의지를 재확인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한국에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미·중 관계의 구조적 문제들은 계속 남을 것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마찬가지다.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