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논란 연극계까지 어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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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성 시비로 법정에 오른 장정일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스크린에 옮겨져 영화가에 파문을 일으킨 데 이어 이번에는 연극무대에 오른다.

극단 씨어터 제로(대표 심철종)는 연극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하재봉 각색과 연출로 5일부터 12월 31일까지 서울 홍대입구 소극장 씨어터 제로에서 공연한다.

원작은 38세의 유부남 조각가 제이가 여고 3년생 와이와 함께 폰섹스를 나누다가 여관에서 만나 변태적 성행위를 벌인다는 것이 기둥줄거리. 문학이나 영화에 비해 훨씬 현실감이 강한 연극무대에서 원작의 파격적인 관계설정과 노골적인 성묘사가 어떤 파장을 몰고올지 주목된다.

시인 겸 영화평론가로 처음 연극 연출에 도전하는 하재봉은 "장선우 감독의 영화 〈거짓말〉은 원작소설의 정치적 코드는 모두 삭제해버리고 두 남녀의 성적 유희만 극대화한 포르노그라피"라면서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성적 행위를 통해 우리 사회에 내재한 폭력적 질서를 극대화한다는 원작의 의도를 제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연극으로 꾸미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극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군인 출신 아버지의 학대로 폭력에 길든 제이의가학성과 피학성을 본격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군사독재의 폐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무대에서의 직접적 성관계를 배제한 채 와이를 끝까지 처녀로 남아있게만들어 논란의 소지를 줄였다.

또한 등장인물들에게 사건전개에 따라 각기 다른 색깔을 입혀 성격의 변화를 드러내도록 한 것이라든지 무대 삼면을 철창처럼 만들어 배우들이 보이지 않는 억압속에 갇혀 있는 느낌을 주는 것도 이 작품의 또다른 특징이다.

그러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노골적인 폰섹스 대사가 여과없이 흘러나오는가 하면 서로의 성기 부위를 애무하는 대목과 반라 차림으로 상대를 때리는 변태적 장면이 등장해 음란성 시비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작자 심철종은 "작품의 특성상 노골적인 대사는 불가피하지만 무대장치나 연출 기법 등으로 최대한 노출장면을 억제, 관객들은 여배우의 전라장면을 볼 수 없으며 미성년자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와이 역에는 패션모델 출신 신인배우 이지현(21)이 발탁됐으며 중견 연기자 오광록(37)이 제이 역으로 캐스팅됐다. 이와 함께 기주봉(아버지), 박해연(우리), 임현주(케이), 백진철(오빠), 권남희(아내) 등이 등장한다.

96년 10월 출간된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작가 장정일과 출판사 책임자가 음란문서 제조 및 판매 혐의로 구속되는 등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올해 7월 제작된 영화 「거짓말」도 베니스 국제영화제 본선 진출에도 불구하고 영화등급심의위원회로부터 등급보류 판정을 받아 극장 개봉을 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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