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 일 찾아 … 맥가이버 아저씨 출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선재 동자원에서 김재호씨(가운데)가 아이들과 함께 오델로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익진 기자]


“맥가이버 아저씨, 빨리 와주세요.” 11일 오후 7시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선재 동자원 2층에서 한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작업복 차림의 50대 남자가 계단을 분주히 올랐다.

그는 즉시 달려가 변기가 막혀 울상 짓고 있는 어린이를 다독인 뒤 금방 변기를 뚫어준다. 이곳은 오갈 데 없는 어린이와 청소년 40명이 생활하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이어 3층 컴퓨터실에서 “맥가이버 아저씨, 컴퓨터가 고장 났어요”라는 소리가 들린다. 부리나케 이동한 그는 “또 뭐가 고장 났니”라며 미소 띤 얼굴로 물어본다. 이어 컴퓨터 본체를 뜯고 5분여 동안 이리저리 점검한다. 고장 난 곳을 고친 뒤 “이제 됐다. 게임은 조금만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라며 등을 토닥여 준다.

 14년째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김재호(53·삼성테크윈 특수사업부 반장·의정부시 호원동)씨는 아이들에게 ‘맥가이버 아저씨’로 불린다. 모든 어려움을 척척 해결해주는 ‘만능 맨’이란 뜻으로 아이들이 지은 별명이다.

 김씨가 이곳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7년. 스님 한 명이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어린이 10명을 돌본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부터다. 그에게 휴일은 ‘원생들과 함께하는 날’이다. 오전 9시에 동자원으로 가 오후 4시까지 7시간 동안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일주일에 두세 차례는 퇴근 후에도 이곳을 찾는다. 초기에 휴일도 없이 봉사활동을 하다 가족들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의 핀잔은 사라졌다. “저를 잘 이해해 준 아내와 아이들이 너무 고맙죠.”

 그는 2005년 버스 운전을 하기 위해 1종 대형 운전면허를 땄다. 방학이면 25인승 버스를 직접 몰고 동자원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한다. 차로 아이들을 목욕탕에 데리고 가는 일도 그의 몫이다.

한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아이들이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집에서 승용차로 5분 거리인 동자원으로 달려간다. 2000년부터는 회사 동료 10여 명과 ‘곰돌이 봉사단’을 결성해 매월 한 차례 이곳을 찾는다.

이때는 하수도 공사 같은 큰일도 한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을까. “이런 일을 봉사활동이라 생각하면 부담이 됩니다. 생활의 일부라 생각하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더군요.” 김씨의 대답이다.

선재 동자원 원장 지산(60) 스님은 “이곳에서 묵묵히 아이들을 돌보는 김씨야말로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전익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