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화력발전소 르포] 블랙아웃 D-? … 잠 못 드는 당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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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는 요즘, 발전소 직원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2일 한국중부발전 산하 서울화력발전소(마포 당인리발전소) 직원들이 발전기를 점검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실내는 어둡다. 직원들은 벽에 걸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169㎏/㎠(압력), 3600(터빈 회전수), 571도(증기 온도). 계기판엔 각종 숫자가 오르내린다. 요즘 이곳은 “완전 비상사태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박흥실 서울화력발전소장)이다. 최근처럼 예비전력량이 적은 때 자칫 문제가 생겨 발전이 삐걱거리면 곧바로 대규모 정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12일 오전, 국내 최초 화력발전소인 ‘당인리 발전소’(공식 명칭 중부발전 산하 서울화력발전소)의 모습이다. 사령탑 격인 ‘중앙제어실’은 4조 3교대로 24시간 돌아간다. 발전기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로 공정을 감시하고, 각종 수치를 점검한다. 이 발전소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쓰는 16개(4호기), 32개(5호기)의 버너로 물을 끓이고 이때 생기는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어낸다. 수증기는 80m 높이의 굴뚝 두 개를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겨울엔 낮은 기온 때문에 수증기가 얼어붙는 등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당인리발전소는 두 개의 발전기를 보유하고 있다. 시간당 최대 13만7500㎾까지 만들 수 있는 4호기와 시간당 25만㎾를 만드는 5호기다. 평소에는 둘 중 하나만 가동한다. 두 개 모두 40년 전 만들어진 발전기다 보니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치솟는 전력 수요에 맞추기 위해 전국의 모든 발전소가 풀가동하기 시작했고, 당인리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이날 오전 5호기는 최대용량보다 500㎾/h나 더 많은 전기를 만들고 있었다. 중앙제어실 강희성 차장은 “열심히 만들어도 생산량이 달린다”며 “전열기 사용량을 줄이는 등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하지만 잘 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날 최대 전력수요는 7178만㎾로 이틀 전 사상 최고치(7184만㎾)를 경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비전력은 421만㎾(예비율 5.9%)로 거의 비상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전력공사는 예비전력이 400만㎾ 미만으로 떨어지면 경보를 발령하고 단계별 대응을 한다. 심각단계인 100만㎾ 아래로 떨어지면 순서에 따라 강제로 전원을 차단한다. 한전 영업처 수요개발팀 조방호 차장은 “예비전력이 100만㎾ 아래로 내려가면 반도체 등 민감한 제품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발전기 운영에도 문제가 생겨 갑자기 멈출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정전 사태를 뜻하는 ‘블랙아웃(Black Out)’ 발생도 우려된다. 한전 관계자는 “한파가 이어지고 전력 수요가 계속 늘면 언제 블랙아웃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며 “원전 1기가 생산하는 전력이 100만㎾이니 한두 개만 생산 차질을 빚어도 대규모 정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겨울철 전력 수요가 늘면 비용도 크게 는다. 발전회사들은 평소에는 원자력이나 수력·석탄처럼 원가가 싼 발전기만 돌린다. 그러나 요즘처럼 수요가 정점까지 치달으면 원가가 비싼 LNG 발전기까지 총동원한다. 이마저 부족해 발전소를 계속 짓게 된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날 담화문을 발표했다. 한파가 이어지고 전력 수요도 계속 늘 것으로 보이자 급히 언론 앞에 나선 것이다. 그는 “이번 겨울에만 전력 사용이 세 번씩이나 최고치를 경신했다”며 “상황이 악화되면 일부 지역에 정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 오전 10~12시, 오후 4~6시 전기 사용을 최대한 줄여달라”고 호소했다.

글=권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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