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실업률 떨어졌지만 … 시장은 ‘냉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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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9.4%와 10만3000개.

 미국 고용시장이 내놓은 지난해 마지막 달 성적표엔 희비가 함께 담겼다. 9.4%의 실업률은 희망을, 10만3000개의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비관을 담고 있다. 실업률은 전달보다 0.4%포인트 떨어졌다. 1년7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이다. 반면 새로 생긴 일자리 숫자는 시장의 기대에 턱없이 못 미쳤다. 장기적으로 실업률을 떨어뜨리려면 매달 최소 20만 개, 더 높아지지 않으려면 15만 개씩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7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 대통령은 떨어진 실업률을 근거로 “고용 시장이 바닥을 쳤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시장은 희망보다 비관으로 기울었다. 들쭉날쭉한 실업률보다는 ‘고용창출 엔진’의 상태가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날 뉴욕과 유럽 증시가 일제히 미끄럼을 탄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 금융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한 데도 이유가 있다. 미국 고용 지표가 올 세계 경기의 향방과 정책 흐름을 결정할 방향타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성장이 주춤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경기가 회복세를 이어가기 위해선 미국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졌다. 그리고 그 핵심이 고용 시장이다.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는 한 미국의 경기 부양책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벤 버냉키(Ben Bernanke)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이 안팎으로 쓴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양적 완화를 재개한 것은 높은 실업률 때문이었다. 백악관이 부시 시절 감세 정책을 연장하기로 공화당과 타협하고 친(親)기업 인사들을 백악관에 앉히는 것도 일자리 늘리기가 다급해진 탓이다.

 드러난 수치로 보면 미국 고용 시장은 여전히 미지근한 상태다. 지난해 말 이후 소비가 살아나는 조짐이 보이고, 주식시장도 랠리를 시작했지만 고용은 아직 제대로 온기가 미치지 않는 ‘냉골’에 가깝다. 지난달 실업률이 크게 떨어진 것도 일자리 사정이 나아졌다기보다는 착시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실업률 통계에 잡히는 실업자는 일할 능력이 있고 구직활동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일자리 구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은 아예 제외된다. 장기 실업 상태가 지속되면서 구직 단념자들이 늘다 보니 전체 실업자 수가 줄고, 실업률도 자연히 낮아졌다는 얘기다. 그러니 경기가 좀 나아진다 싶으면 이들이 다시 대거 구직에 나서며 실업률을 다시 끌어올릴 여지가 있다. 구직 단념자들과 준실업 상태인 파트타임 근로자들을 포함시킨 ‘실질 실업률’은 16.7%에 달한다.

 결국 앞으로도 관심은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 숫자에 쏠릴 전망이다. 금융위기 발발 직전인 2007년 12월부터 2009년까지 미국에선 84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지난해에는 증가세로 반전됐지만 늘어난 일자리는 110만 개에 그쳤다. 이 추세라면 2016년에야 잃어버린 일자리를 모두 복구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버냉키 의장은 7일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고용시장 회복세는 좋게 봐도 완만한 수준”이라면서 “완전히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4~5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물가 걱정 등은 제쳐두고 경기 부양에 힘을 쏟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금융위기 이후 1조7000억 달러를 푼 1차 양적완화로 늘어난 민간 부문 일자리는 180만 개, 지난해 11월 시작된 2차 양적완화는 내년까지 120만 개의 일자리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란 게 연준의 추산이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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